글
질병을 치료하고 부자가 되기 위하여 교회로 오라.
091129(주일오전)
눅4:16-21
어떤 사람이 “oㅅ....”라는 기독교 인터넷카페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 여러분들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기독교의 본질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바로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입니다.
성경66권의 핵심적이며 기본적인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며, 그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는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이 그것과 다르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을 재점검하여야만 합니다.
-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교회를 왔는가?
-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를 왔는가?
- 신비한 능력을 받기 위하여 교회를 왔는가?
이러한 신앙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부수적인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본질적인 것을 외면하고 부수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목회자이고, 여러분의 사역이 성경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사역을 재점검하여야만 합니다.
- 교인 수를 늘리는 부흥을 위하여 목회를 하는가?
- 교회의 크기나 재정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목회를 하는가?
- 치유, 은사 등의 기적과 표적을 보이기 위하여 목회를 하는가?
이러한 것들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부수적인 것일 뿐입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여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곧 목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성도이건, 목회자이건,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을 잊으시면 안됩니다.(후략)>><< http://cafe.daum.net/ilmak/5OzE/777 >>
여러분들은 이 말을 들으시며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공감대를 형성하십니까? 아니면 뭔가 불편함을 느끼십니까?
이 글에 달린 리플들을 몇 가지만 소개해 봅니다.
- 샬롬! 아멘. 감사할뿐입니다. 양보다 질적 신앙의 본질이 꼭~ 필요한 때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 외에 우리에게 아무 위미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하기 위하여 담아갑니다. 샬롬.
- 할렐루야.
- 아멘. 아멘.
- 할렐루야! 저의 주변에서도 본질이 아닌 이적과 표적을 앞세워 많은 영혼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혼자 울곤 합니다. 너무 좋은 말씀 감사하고 위로가 됩니다.
- 옳으신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이상의 글과 이와 같은 리플들을 읽는데 제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매우 심한 안타까움과 의분이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바로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입니다. 성경66권의 핵심적이며 기본적인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며, 그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라는 필자의 말에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고, 저 역시도 그 말에 대하여는 100% 전적인 지지를 합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체의 어떤 한 부분만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른 부분을 축소시키거나, 희생시킨다면 그것은 또 다른 잘못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바로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영생”입니다. 성경66권의 핵심적이며 기본적인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며, 그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라는 그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만약 여러분이 믿는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이 그것과 다르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을 재점검하여야만 합니다.
-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교회를 왔는가?
-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를 왔는가?
- 신비한 능력을 받기 위하여 교회를 왔는가?
이러한 신앙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부수적인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본질적인 것을 외면하고 부수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라는 이 말은 분명히 틀린 말임을 아셔야 합니다.
기독교신앙의 본질은 영혼구원에만 있는 것인양-물론 영혼구원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교회를 나오고,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를 나오고, 신비한 능력을 받기 위하여 교회를 나오는 것은 중요하지 않거나 혹은 성경적이지 않고 잘못된 것인양 매도(罵倒)하는 이 말은 성경적으로 전혀 틀린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성경말씀과 예수님의 사역이 기독교신앙의 절대기준이라면,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와야 하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서도 교회에 와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서도 교회에 와야 하는 것입니다.
신비한 능력을 받기 위하여서도 교회에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도 아니고, 기독교를 오해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과 기독교를 정확히 이해한 사람들이 그런 목적으로 교회를 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교회가 그런 사명을 잘 감당치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런 목자(영적 지도자)들에게 진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런 사명을 잘 감당치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양무리인 교회성도들이 엉뚱한 곳으로 배회하게 되며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B.C 586년경, 에스겔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영적 지도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통렬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에스겔서 34장입니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치유사역을 하며,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해 주는)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 떼가(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마다 유리 되었고 내 양 떼가(하나님의 백성들이)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34:4-11,21-23)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 가운데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상한 자를 싸매어 주고,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0:28절에 에베소교회의 장로들(목회자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목회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에 감독자, 다시 말해 목사들을 세우시는 이유가 하나님의 양무리인 성도들을 보살피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과 같은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들 가운데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상한 자를 싸매어 주고,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그 일이 바로 목사의 일이고 교회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25-26절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1. 모든 질병을 고침받기 위하여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그 질병을 고침받기 위하여 교회에 나와야 하고,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든 질병을 고침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모든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병 고침을 받고자 예수님께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고(히13:8),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그런 일들을 동일하게 행하는 곳임을 또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1:23절에『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마4:23-24)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이상의 말씀들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고 그에게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의 모든 질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왜 입니까?
다음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6-17)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병든 사람이 병 고침을 얻으려고 교회에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의학적으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예수님의 구속 안에서 치유받을 것을 믿고 기대함으로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유해 주시려고 채찍에 맞아 그 온몸이 갈갈이 찢겨지신 것임을 아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간증을 그대로 소개해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치료제임을 가르칠 때마다, 나는 뉴멕시코주의 엘버커기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들은 간증을 기억합니다.
예배가 끝난 후, 한 여자가 나와 내 아내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이 여자는 자기 발을 가리키면서 불쑥 말했습니다.
“나는 마흔일곱 살이고, 이건 내 평생 처음 신어 본 신발이에요!”
나와 내 아내는 둘 다 그녀가 새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마흔일곱 살이 되어서야 새 신발을 살만한 돈이 생겼다고 말한 것일까요?
그 여자가 설명했습니다.
“나는 절름발이로 태어나서, 평생 한 번도 온전한 짝의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어요. 한쪽 발은 정상이라 신발을 신을 수 있었지만, 반대쪽 발은 언제나 특수 제작된 신발을 신어야만 했어요.
또한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짧아서 나는 언제나 이런 나의 상태를 숨기려고 했고,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다 누군가 나에게 해긴 형제님, 당신이 믿음에 대해 다룬 테이프 세트를 주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거기에서 도무지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냥 계속 듣고 또 들었지요.
나는 여러 번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받았어요. 우리 교회에 온 모든 복음전도자들이 내게 기름을 바르고 안수하고 기도해 주었지요.
하지만 그 때는 아무도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고, 아무도 내게 손을 얹지 않았어요. 누구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았어요. 사실 나조차도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테이프를 거의 끊이지 않고 6개월 정도 들은 후에, 내 발과 다리가 그냥 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완전히 정상이 되었어요!”
그녀가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발에 새끼발가락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발가락까지 자라게 하셨어요!”>>
(케네스 해긴. 하나님의 말씀. 김진호 옮김. 믿음의 말씀사. 2008년. pp.53-55.)
여러분들이 어떤 질병을 가지셨든 상관없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그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그 믿음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여러분들도 동일한 치유를 맞보게 될 것입니다. 질병을 치유받기 원하는 사람은 교회로 나와서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처럼 예수님의 치유능력을 믿지 않거나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치유가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막6:1-6). 12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믿고 고백하며 행동함으로 그의 병을 치유받은 것처럼(막5:27-34), 우리도 동일한 믿음으로 치유의 주님을 바라보며 교회에 나오기 시작할 때에 동일한 치유와 회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모든 질병을 고침 받고 건강한 몸으로 가족과 이웃과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되기 위하여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 65: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습 1:12-13) 『[12]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13]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했습니다.
우리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우리의 죄악만을 담당하시고 해결해 주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죄악과 더불어 우리의 가난까지도 담당하시고 해결해 주신 분이십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의 저주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은 저주이지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난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부요와 건강을 주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롬3:23),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형벌인 저주가 찾아왔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신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저주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신 28:16-19,38-40)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38]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39]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40]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범하면 저주를 받는데, 그 율법의 저주가 세 가지인데 가난과 질병과 사망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우리의 죄악만을 담당해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저주인 가난과 질병과 사망까지도 담당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가난, 질병, 사망)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부요, 건강, 영생)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함이라.』(갈3:13-14)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저주가 우리에게 임하는 대신 예수님에게 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 더 이상 율법의 저주를 담당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복과 신체적인 복과 물질적인 복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 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고 열심히 일하면 일하는 만큼 부흥이 찾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신 28:3-6, 8)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우리가 율법의 저주인 가난을 대속하신 주 예수를 믿고, 성경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반드시 부자가 되고 가난하지 않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 15:4-5)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성경과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장차 올 천국에 대한 희망만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장차 올 천국에 대한 희망과 동시에, 이 땅에서도 그 천국의 권세와 능력, 부흥을 누리게 하신다는 약속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교회로 와야 하는 것이며, 주 예수를 믿고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 부흥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성경적인 좋은 믿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안에서 부자가 되고 그 부요함을 가지고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을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 신비한 능력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라.
신비한 능력을 얻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위하여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신비한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과 복음, 구원의 사실을 확증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히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벧후 1:3-4)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기독교의 구원을 전파하면서도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야 말로 정말로 이상한 것입니다. 진짜 복음은 진짜 신비한 능력으로 확증이 된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가짜 보석을 경계한다면서 진짜 보석을 가짜 보석취급하며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차라리 가짜와 진짜를 안가리고 둘 다를 소유하는 사람보다 더 못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을 정확한 분별력은 필요 없고 어떤 것이든 능력만 나타나면 된다는 식의 말로 곡해하거나 오해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11)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도바울은, 그가 진짜 사도, 진짜 주님의 종임을 확증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신비한 능력에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고후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물론 단지 질병의 고침만을 위하여, 단지 부자가 되기만을 위하여, 단지 신비한 능력만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온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질병을 고침 받고, 부자가 되고, 신비한 능력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성경적인 올바른 기대감과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사역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구속은 단지 죄사함과 영혼의 구원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셨습니다(롬4:25).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의 가난도 대속하셨습니다(고후8:9).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도 대속하셨습니다(마8:16-17).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신비한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엡1:3,벧후1:3-1).
바로 이상과 같은 그 진리가 다음과 같은 이사야선지자의 예언 속에 그대로 다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가난의 고통)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질병)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치유함)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3-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6-17)
그러므로 사람들은 죄악과 허물의 사함을 받는 동시에,
질병을 고침 받기 위하여서도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예수 믿어야 합니다.).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하여서도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예수 믿어야 합니다.).
신비한 능력을 얻기 위하여서도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예수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전혀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닌 지극히 성경적인 제대로 된 신앙인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그런 것들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들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2:4)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출23:25-26) 아멘.
모든 죄악과 허물의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 믿읍시다.
모든 질병을 치유 받고 건강하기 위하여 예수 믿읍시다.
모든 가난과 저주를 물리치고 부자가 되기 위하여 예수 믿읍시다.
모든 영적인 무지를 벗어나고 신비한 능력을 얻기 위하여 예수 믿읍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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