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바르게 읽어 바르게 해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이란 아무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교회에서 혹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저도 배운 대로 가르치다가
성경을 더 여러 차례 읽고 가르치면서 한 가지씩 두 가지씩 내가 잘 못 배웠고
잘 못 가르쳐 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성도들 앞에서 내가 잘 못 배웠고 잘 못 가르쳐 왔다고 고백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고백하지 않고 계속하여 잘 못 가르친다는 것은 실로 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교회 앞에서 고백을 하고
남은 생애 최선을 다하여 바르게 전하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이 바른지 아닌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문제이기는 합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는 틀림없다고 믿고 전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과 그 외 온 세계 모든 목사님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제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잘 못 배운 것은 다른 사람도 잘 못 배울 수 있고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유행처럼 자행되고 있는 몇 가지만 열거 해 보겠습니다.

1.송구영신 예배 때에 카드를 뽑고 헌금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거기에 적인 구절이 그 사람에게 그 해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일천번제라는 것은 온 세계 모든 목사님들이 다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잘 못 된 것입니다.

3.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연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는
  기대는 잘 못된 것이 확실합니다. 한국 교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하지만
  이 역사의 연장선에서 지금 이후에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4.신약 시대에는 아무 것이나 다 먹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잘 못된 것이 확실합니다.
  몸에 해로운 것이면 지금도 더 해롭고 앞으로는 더 해로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과거에는 오염도 덜 되었고 또 육체적으로 많은 노동을 해서 덜 해로운 수 있었지만
  오늘 날에는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5.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서 이겼기 때문에 에서에게 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천사와 씨름하기 전에 라반에게 해를 당하지 않았던 것은 천사를 만나 씨름하기 전이었습니다.

6.하나님의 말씀이 짝이 있다고 해석하는 이사야서 34장 16절 해석은 잘 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에서 족속이 멸망한 후에 에돔 땅이 황폐하여 거기 모여든 동물들이 짝(암컷=래우타흐)을
  데리고 와서 노는 곳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7.기드온의 300 용사 운동이란 잘 못된 것입니다.
  그냥 개처럼 물을 핥은 300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8.별미를 바쳐야 축복받는다고 가르치면서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창세기를 잘 읽어 보시면 전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일반 성도들도 다 알 수 있습니다.

9.대환난 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대부분의 목사들이
  거의 다 똑 같이 가르치고 있지만 틀린 것입니다.

10.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니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하는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액자를 만들어 걸어 두는 것은 잘 못된 것이 확실합니다.

11.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이 아가페 사랑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12.십일조하면 복 받는다는 것이 말라기라는 책의 주제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성경을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13.예레미야서 중에서 33장 3절 한절만 요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잘 못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교회 성도 대부분의 저지르고 있는 과오입니다.

14.가인의 제사에 피가 없어서 받지 않으셨다고 가르치는 것도 잘 못된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왜 피가 없는 제물을 가져왔느냐!” 하고 책망한 것이 아닙니다.

15.노아가 방주를 짓는 데 120년 걸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해석은 잘 못된 것입니다.
    이는 조금만 계산만 해 보아도 잘 못된 것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16.아브라함의 고향을 갈대아 우르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아브람이 태어난 곳은 하란이었기 때문입니다.

17.예수님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갔다고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아직은 그 몸이 무덤 속에 있고 그 영혼은 아브라함의 품 혹은 낙원에 있다가 주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하거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후에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18.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지옥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것도 꼭 같이 잘 못되었습니다.
    성도들이 부활하여 천년 왕국을 누린 후에 불신자들이 심판의 부활로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 후에야
    불과 유황으로 타는 곳 즉 지옥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19.그 외 제가 성경강좌 때에 지적하였던 것들은 지금 세상에 있는 많은 목사들이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고 거기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확신을 합니다.

20. 에스겔서와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생물을 4 복음서라고 다들 해석하지만
     이는 매우 잘 못된 해석입니다.

21.요엘서 1장 4절에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을 제롬과 같은 학자들과 대부분의 학자들이
     바벨론 앗수르 헬라 로마라고 해석한 것은 치명적으로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22. 요엘서 2장 4절~11절에 나오는 군대는 전도자가 아니라 메뚜기나 해충들인데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이를 전도하는 예수님의 추수꾼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3.요엘서 2장 23절에 말하는 이른 비를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해석하고
     늦을 비를 주님의 재림직적 즉 말세에 강림하는 성령의 강림으로 해석하는 늦은비 신학은
     오늘날 오순절교단에서 주장하지만 이는 현저하게 잘 못된 해석입니다.

24.잘 된다 복준다 하는 구절만 보면 자기 보고 한 말이고 저주의 경고가 있는 구절에 대하여
    눈을 감고 넘어 가는 자세는 잘 못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그렇게 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들 하고 있는데 이는 크게 잘 못된 것입니다.

25. 미가서와 스바냐서 같은 예언자들의 말씀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말씀들인데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평생을 단 한번도 설교하지 않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26. 요한 계시록은 인류의 역사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들이 겪을 대 환난과 인내와
     시험을 계시한 책이라 매우 중요한데도 이를 봉해 두고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과오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7. 대 환난 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교회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치명적으로 잘못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28. 요한 계시록 4장 1절에 이리로 올라 오라 하는 말씀을 휴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저하게
     잘못 배운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미국과 한국의 침례교도들과 오순절 계통의 목사들이
     공통적으로 범하고 있는 실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9.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성경에 부합되지 않는 해석들이며
     요한계시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주장한 이론에 불과합니다.

30. 마태복음 24장에 무화과 나무의 싹이 연하여지고 라는 말씀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무리한 해석들입니다.

31. 사도 도마를 의심 많은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잘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 도마는 결코 의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 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믿으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의심 했던 주님의 부활은 다른 사람들도 다 의심했던 것이고 도마가 의심했던 것은
     주님의 부활 이외 어떤 경우에도 의심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32.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축복(祝福)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 못하는 것입니다.
      손 윗 사람이 누구를 위하여 복을 빌어 주는 것이 축복(祝福)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빌고 기도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는 많은 목회자들이 다 하고 있지만 틀림없이 잘 못된 것입니다.

33. 성경을 통전적으로, 즉 전체를 바르게 보지 못하신 분들은 부분도 바르게 해석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으로써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원리였습니다. 전체를 바르게 알아야 부분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34.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홀로 주관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 보시면 단 한 곳도 그렇게 가르치는 부분은 없다.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는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었습니다.
    
만약 역사를 하나님께서 홀로 주관하셨는데 그 역사가 잘 못되었다면
그 책임을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에게, 즉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수가 없고
인간이 오히려 하나님을 탄핵하거나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를
홀로 주관하실 것이라고 철통같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주관(主管)이란 말이 38 회 정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악령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여기서 세상 주관자(코스모크라토르)는
악한 마귀와 귀신들과 그 귀신들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며
사람들을 주관하는 정치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엡 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단지 베드로 후서에 한 번 나오는 [주관하는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이 때 사용된 용어는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가 아니라
최후의 심판을 주관하는 이(퀴리오테스=주님)이다. (벧후 2: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퀴리오테스=주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따라서
우리는 세상이 잘 못되어 갈 때 이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악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주관하는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 즉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들이
역사를 잘 못되게 했을 때는 세상 끝 날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교회는 이들 즉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들이 잘 못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바른 말을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거룩한 책무가 있다는 것을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작금에 기독교의 목사들이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다 기록하려면 제 남은 인생을 다 바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정답을 모를 때는 보는 관점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답을 알고 나면 여러 가지 관점이란 잘 못된 것임을 누구나 알게 됩니다.

 

에스라성경강좌에 참석하는 분들이 매년 4천명 내지 5천명 가량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목회자 선교사 신학생 등 신학을 하신 교역자들이 항상 20 % 안팎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목회자들이 10,000 명 이상이 수료 했습니다.
목사님들의 경우에는 더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체로 목사님들의 경우에는 5회 내지 7회 정도 참석하신 후에야
자신들이 잘 못 배운 것이 확실하다고 고백들을 합니다.

누구든지 최소한 10 번 정도 더 참석해 보시고 또 목회를 하시면서
한국 교회와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좀 더 알아 가시다 보면 그동안 우리 기독교가
성경을 너무나도 안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 잘못 가르치고 미흡하게 가르쳐 왔다는 것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강좌를 들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 많은 목사님들이 다 잘 못될 수 있다는 말인가.......!?하면서
오히려 노우호 목사 한 사람이 잘 못되었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도 잘 못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많은 카톨릭(기독교보다 더 많음)이 잘 못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잘 못되었고 루터와 칼빈은 이를 간파하고 일어서 종교개혁을 추구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슬람교가 다 잘 못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많은 이슬람교 전체가 잘 못되었습니다.

1억 5 천만이나 되는 흰두교가 잘 못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힌두교는 잘 못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온 세상에서 힌두교 신자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스님들이 다 잘 못되었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물론 그 많은 스님들이 세상을 다 버리고 수도 정진했지만 잘못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유대교 랍비들이 독사의 자식들로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율법학자들이 잘 못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서기관들, 성경을 손으로 일일이 사본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잘못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잘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철학자들, 그렇게 많은 박사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 그렇게 똑똑해 보이지만 잘 못되었고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대학들이 있고 그렇게 많은 교수들이 있지만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신학대학 교수들이 있지만 결코 모르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목사님들보다 더 많은 가톨릭 수도사들이 세상적인 모든 것은 다 포기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수도하고 하지만 잘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렸던 말씀 중에 후세에까지 남기고 싶은 말이 한 구절 있습니다.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하는 것입니다.

비교하고 분석하고 고민하는 갈등한 것은
저도 누구 보다 더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비교해 보시고
또 연구 비교 분석 분별 판단 해 보시고 그리고 스스로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강의 중에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
노우호 목사든 그 누구든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도 꼭 같은 약점과 허물이 있는 하찮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노우호라는 사람을 지나치게 신뢰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드릴 말씀은 제가 한 말과 주장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진지하게 분별하고 고민하는 일은 각자의 몫임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샬  롬


노우호 목사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  (0) 2011.07.12
지옥에서 48시간  (0) 2011.07.11
선포적 대적기도  (0) 2011.07.11
예수 사랑의 원칙(양선)  (0) 2011.07.11
종려주일, 고난주간 묵상자료(월-토)  (0) 2010.03.27
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1.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