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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 수난주일 설교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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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를 힘 있게 외치면서
석의적 접근
구약의 말씀 사50:4-9상
구약의 본문은 성서일과의 3년 주기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말씀으로, 이사야 서가 담고 있는‘고난의 종의 노래들’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첫 번째 노래에는 하나님께서 종을 택하심에 대한 말씀이 나타나며, 두 번째 노래에 서는 고난의 종이 모태에서부터 이미 그의 사명이 결정되었음을 말씀한다. 세 번 째 노래는 고난 받는 종의 확신을 노래한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주 여호와”에 대한 언급이 4번씩이나 거듭되고 있다. 이와 같이 고난 받는 종의 고 백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이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4-5절에서는 그의 사명을 선언하고, 5-6절에서는 제자도를 위한 종의 연단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7-9절에서는 고난의 종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실성을 고백하고 있다. 고난 받는 종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을 잘 알고 있다(4절). 무엇보다도 그는 학자의 혀와 귀를 언급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그는 학자와 같이 잘 알아들 을 수 있어야 했으며, 그의 혀는 그가 들었던 그 말씀을 정교하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여기에서 고난의 종의‘듣는 것’과‘말하는 것’을 통한 사역은 특별한 주의를 끌고 있다. 그의 사역은 곤핍한 자들을 돕는 것이었으며, 세우는 것이었다(sustain). 포로생활에 지쳐서 곤핍해 있는 자들을 돕는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국의 권세를 정복하셨음을 선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귀한 사역을 위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학자의 귀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제 고난의 종은 반대와 모진 핍박에 직면한다. 모진 핍박은 육체적인 능욕과 사회적인 차별, 그리고 괴롭힘을 동반한다. 그러나 고난의 종은 그러한 압박에도 대항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귀를 여셨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에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반응을 보일 뿐이다. 아마도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확신의 말씀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타나는 고난의 종의 확신은 그 모든 시련으로부터 그를 강하게 해주었고, 오히려 담대하게 해주었다. 8-9절의 문장 양식은 법정에서의 변론체로 되어 있다. 이곳의 원어 문장들은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두 인물이 비교되고 있는데,“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8절)와“정죄할 자”(9절)가 그것이다. 고난의 종은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그를 정죄하는 사악한 자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 가는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빌2:5-11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 의해서 오늘의 유럽 지역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로 바울과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교회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감옥에서 편지를 써 보내고 있는데, 빌립보 교인들의 영적, 물질적 후원에 대한 감사와 교회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교훈을 주고자 함이었다.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로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화합의 원천이며 믿음생활에서 바라보고 따라야 할 신앙의 푯대로 제시하고 있다. 이 말씀은 성서 신학자들에 의해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 그들은 결국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초대교회의 찬양이며, 신앙고백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여기
에는 5가지 정도의 기독론적 진술들이 담겨 있는데, 그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고백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선재하심(Preexistence)에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둘째는 종의 메타포를 사용해서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겸손을 보여 준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고백이다. 죽으심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십자가는 세상을 위하여 당하신 그리스도의 수난과 치욕을 잘 보여 준다.
넷째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가 선언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완성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셔서 부활하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통치를 선언하고 있다. 그분 앞에서 모든 무릎이 꿇게 될 것이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죽기까지 순종하심, 그리고 승리하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으며, 자신을 드리신 희생에는 인류를 살리시려는 거룩한 사랑이 담겨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들의 찬양은 마땅한 것이며, 그의 모습을 닮아감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복음서의 말씀 막11:1-11
종려주일의 복음서 본문은 무리들이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지만, 예수님의 행동들을 증언했던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잠시 동안의 환영이었음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환영했던 무리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예수님을 반대하고 죽이라고 소리치며 대적하는 무리 속에 끼어든다. 예수님의 권능과 왕권이 강조되어지면서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복음서의 기록들은 처음부터 그러한 아이러니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마가는 11장에 들어오면서 이전까지 갈릴리에서의 활동을 끝내고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셔서 두 제자들을 보내시는데, 그들이 나귀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을 가르쳐 주시면서 끌고 오도록 지시하신다. 예수님은 어디에 나귀가 묶여 있을 것인지와 끌고 오는 과정에서 어떠한 질문들이 주어질지, 그리고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다 알고 계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왕권에 대해 순종하는 아름다운 한 무명의 신앙인을 만나게 된다.“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 한 마디에 그의 소유를 내놓고 있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실 때 마리아의 순종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순종은 이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그의 드림은 왕에 대한 아름다운 헌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예수님의 권능을 강조하면서 본문은 예수님의 왕권(kingship) 역시 강조하고 있다. 길에 그들의 망토가 펼쳐지는 모습은 예후의 대관식에 그의 군대들이 행했던 모습을 기억나게 해준다(왕하 9:13). 예수님의 왕권과 연결해서 볼 때 가장 분명한 묘사는 시편 118편 26절에서 인용한 10절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는“왕”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반면, 마가는“다윗의 나라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제자들은 그분이 실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이심을 인식하게 된다. 누가는 그들의 찬양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한 바리새인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반면에, 마가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는 장면에 강조점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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