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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현실 세계를 빨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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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2 1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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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시대, 컴퓨터를 꺼라
‘삶의 업로드’를 통해 기억 등 모든 정보를 구름 너머로 보내는 클라우드 세계의 도래
‘현실 속 클라우드인가, 클라우드 속 현실인가.’ 지난 6월6일 애플이 아이클라우드(iCloud) 서비스 선언을 함으로써 ‘클라우드 시대’로 빠르게 변화해나갈 것이다. 그동안 아마존을 비롯해 거대 정보기술(IT)·인터넷 업체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진행해왔지만, 애플의 참여로 대중적 열기가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이제 비로소 구름 너머 저쪽에서 현실 세계로 내려온 듯하다.
‘클라우드 시대’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그동안 기억의 주기억장치 구실을 하던 컴퓨터의 위상이 크게 줄어들고, 사이버세계의 현실 복제 능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사이버공간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그 목소리를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다. 클라우드는 과연 우리 앞에 어떤 ‘신세계’를 펼칠지 점검해본다._편집자
김국현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
클라우드(Cloud)가 붐이다.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스티브 잡스가 아이클라우드(iCloud)를 발표한 이래 유독 클라우드에 더 신경을 쓴다. 잡스의 상징성과 후광효과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계속 걸리는 단어가 바로 ‘클라우드’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PC에서 스마트 단말기까지 사용자의 눈길과 손끝을 두고 애플과 경합하는 업체들은 이미 클라우드를 에워싼 말을 풀어놓고 있었지만 유독 별다른 말이 없던 애플의 발표로 ‘이제는 모두 클라우드의 흐름을 피할 수 없게 됐나 보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모두 클라우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제 각각의 정의에 따라.
클라우드, 즉 ‘구름’이라는 일반명사는 그 자체로도 다양한 상상과 해석을 부를 수밖에 없다. 컴퓨터 시스템 도면을 그릴 때 네트워크를 두루뭉술 구름처럼 그리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니만큼 명확한 정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이것이 실체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의견이 분분하고, 어느 정도 마케팅 용어인 것도 사실이다. ‘클라우드’라는 용어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중후장대한 서버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에서 기업 내 개발자나 정보기술(IT) 전문가를 대상으로 시나리오를 펼쳐온 것이 대부분이다. 대강 귀에는 익지만 굳이 일상인에게까지 의미 있는 용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클라우드 아래 모두 평등하리라 클라우드 시장은 2006년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유휴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저장·계산하게끔 공개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막됐다. 부담되는 서버를 매번 구매할 필요 없이 종량제로 클라우드의 저장 공간과 계산 능력을 빌려 쓰며, 웹사이트도 게임도 만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하자 일대 유행했다. 시장이 점점 커지니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같이 잉여 자원에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인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차세대 키워드로 정착했다. 저장 공간과 계산 능력을 남에게 맡기고 필요에 따라 임대해 쓴다는 발상은, 기술자뿐만 아니라 사용자마저 반가워할 만하다.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 등 오피스 프로그램조차 클라우드 위에 놓고 빌려 쓰거나, 개인의 사진과 자료를 클라우드에 올려둬 일상생활을 저장하는 등 일상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역할로 클라우드의 무게중심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즉, 클라우드가 종량제의 임대 데이터 센터 이상으로 우리 일과 삶에 관련된 무엇이 있음을 암시하는 일이 느리지만 굵직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쐐기를 박는 것이 바로 애플의 선전포고였다. 이로써 PC, 스마트폰 등 사용자에게 접점이 되는 플랫폼과 운영체계(OS)를 지닌 모든 이들은 클라우드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클라우드가 이제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대변화로 구체화됐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구름 너머, 그러나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종합운동장만 한 데이터 센터에서, 개발자나 IT 기술자가 마음 놓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올리면 알아서 돌아가고, 서비스가 없어지는 일도 모자라는 일도 없는 테크놀로지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한 것이 클라우드였다. 이 신대륙의 이야기에 먼저 솔깃해하는 이들은 기술자였지만, 이 변화가 모두의 것이 되리라 직감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같은 전산 자원이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그 얼개를 따라 우리 생활도 디지털이 되어 얼마든지 따라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구름을 볼 수 있듯, 디지털 생활도 그렇게 우리를 지켜보듯 떠 있는 클라우드 위로 빨려들어간다. 그동안 PC나 매킨토시를 애지중지 안고 다니고 책상에 모셔놓은 이유는 그 속에 우리 일과 삶의 발자취가 쌓여갔기 때문이다. 행여 하드디스크라도 망가지게 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수십만원의 복구비를 아끼지 않던 이유도 컴퓨터는 오랜 기간 우리 삶의 허브가 돼왔고, 그 흔적이 묻은 기계였기 때문이다.
기억의 허브, 바로 옆 컴퓨터에서 구름 너머로 이동 그 속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USB로 연결해 정보를 퍼나르거나 ‘동기화’했다. 컴퓨터는 아날로그 삶을 디지털로 바꾸며, 네트워크 저 너머로 이어주는 허브였다. 클라우드의 등장은 ‘중앙처리장치(CPU)’가 강등되는 사건이고, 동시에 디지털 생활의 구심점이 옮겨지는 일이다. 책상 위 컴퓨터에서 클라우드로 말이다. 지금까지 스마트폰, PMP·MP3 플레이어, 태블릿 등 모든 새로운 장비에는 기본적으로 PC가 한 대쯤 있어야 작동이 가능했다. PC는 ‘모함’(母艦)이 되어 수많은 ‘주변기기’를 관리·감독하며 우리가 디지털 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왔다. 윈도와 아이튠스가 그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새 PC, 매킨토시 같은 컴퓨터 외에 스마트폰이니 아이패드니 하는 수많은 창이 생겨나고, 이 창들은 모두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바라보게 됐다. 컴퓨터는 결국 인터넷 저 너머를 보기 위한 창임을, 아니 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모든 개별 단말기가 파견돼 구름 저 너머와 바로 소통하게 된 시대에 번잡하게 모함이 주둔하고, 그 모함을 통해서만 통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클라우드의 등장은 PC가 인터넷 너머, 구름 저편을 바라보기 위한 또 하나의 화면으로 강등되는 대사건이다. 지난 수십 년간 경쟁하듯 PC 하드디스크 용량은 해마다 늘어왔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이제 이 군비 경쟁은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PC 저 너머, 더 안전하고 믿음직스러운 구름 위 저장소에 내 모든 정보가 담긴다면 굳이 번거롭고 위험하게 직접 관리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스마트 기기류는 PC 보조기기 역할이었다. 귀찮지만 아이튠스 등 PC상의 무언가를 통해 자신이 의지하고 때때로 돌아갈 모함을 인지해야 했다. 그러나 네트워크 접속이 당연해진 시대, ‘스마트하다’는 것은 스스로 독립 활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PC든 스마트폰이든 태블릿이든 모두 인터넷에 연결되었으면, PC를 바라보지 말고 인터넷 저편의 클라우드를 다 함께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기기와 단말기에 클라우드와 연결하기 위한 부분을 튼실하게 만들면서, PC 없이 ‘일과 삶의 업로드’라는 독자적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클라우드 아래에서는 누가 또 다른 누구의 대장이 되지 않는 기기들의 평등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클라우드 덕에 모든 CPU와 액정은 단지 속도와 크기만 다를 뿐 공평한 구성원으로 똑같이 활약할 터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모든 데이터는 PC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사진·연락처·문서 등 많은 부분은 사용자 조작 없이도 클라우드로 넘어간다. 내 일거수일투족은 내가 쓰는 단말기 곳곳에 흔적만 남긴 채 클라우드로 집합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케이블을 연결하지 않아도 어느새 내 PC에서 하나하나 볼 수 있다. 스마트폰 사진이 클라우드를 통해 태블릿 PC와 노트북을 넘나드는 것처럼 내 생활과 일은 구름으로 빨려들어간다. 그곳은 얼마나 광활할까? 내가 인간으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의 총량을 이미 넘는 용량이 무료나 염가로 제공되고 있다. 사업자로서 비용은 아무래도 좋다. 무어의 법칙에 의해 컴퓨터 자원은 해가 갈수록 싸지지만, 기억·추억·삶, 즉 우리의 데이터는 해가 갈수록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가두어두는 것은 강력하게 충성도를 끌어올 수 있는 길이다. 내 인생이 그 안에 있다면 그곳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누군가가 클라우드에서 비전을 봤다면, 그래서 클라우드에 투자하려 한다면 바로 이 타인의 인생을 가두어두는 일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초거대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클라우드
자연스럽게 생각은 국경으로 구획된 현실 세계의 의미로 흘러간다. 구름이 국경을 모르고 바다와 대륙을 넘어 흐르듯, 현재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클라우드는 대부분 이익과 격차를 찾아 세계를 달리며 거점을 만드는 초거대 다국적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클라우드 맹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규모 온라인 서비스를 세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갑자기 클라우드라는 제국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미 투자한 여력을 재활용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즉, 다국적기업이라는 거대 생명체가 시대 변화에 적응한 자연스러운 결과다. 어쨌거나 한반도 동해안에서의 추억과 그날의 일기도 미국 서해안이나 노스캐롤라이나의 데이터 센터로 빨려들어가지만 어떠한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인터넷이 공간적 거리나 지정학적 격차를 없앴고, 소셜 네트워크가 전세계 인민의 소통과 각성을 가능하게 했듯이, 클라우드는 우리의 일과 삶을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가상 공간으로 흡수해버리는 ‘세계적 사건’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을 IT의 박진감 넘치는 발전에 의해 지구 반대편의 사태나 사건이 내 의사 결정에 순간적으로 반영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라 이해한다. 클라우드가 몰고 온 변화란 바로 ‘정보화로 가속화하는 세계화’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대적 변화의 또 다른 변종에 불과하다. 이 흐름에 자극받은 국지적 클라우드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 설비 역량을 지닌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과 각 통신사들이 경쟁적으로 클라우드를 제공하면서 N드라이브, 다음클라우드, 유클라우드 등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며 클라우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제품과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기존 웹하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동시에 접속해 사용성이 보편화된 점은 다르다. 하지만 플랫폼이나 OS 등 사용자 체험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애플과 구글처럼 이미 하드웨어나 OS를 소유했거나 교섭력을 지닌 이들에 비해, ‘클라우드 아래의 모든 이에게 평등’과 같은 초월적 메시지를 내는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용량 온라인 저장소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디지털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조금도 거치적거리지 않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클라우드와 이어지는 것은, 플랫폼을 모두 일사불란하게 도열할 수 있는 규모에서 벌이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마치 CPU와 하드디스크 사이의 신호가 자동으로 오고 가듯 현실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흡수해가는 방식이나 안정성이 회로 수준이 돼야, 잡스의 주장대로 ‘그냥 하면 된다’(It just works)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현실을 빨아들이는 회로는 그렇게 움직인다. 클라우드가 ‘현실의 흡수 복제’라는 면에서 기존 가상공간 논의와 다른 점은, 가상세계로의 명시적 이행을 뜻하는 ‘접속’ 대신 현실의 묵시적 복제가 우리 인지와 관계없이 되는 것이다. 클라우드 이야기가 없던 시절에도 우리 일상은 네트워크로 넘어갔지만, 그마저 ‘동기화’나 ‘업로드’라는 명시적 행위로 이루어졌다. 네트워크 컴퓨팅이니,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니, 유틸리티 컴퓨팅이니 하는 그동안 오고 간 비슷한 유행어들과 클라우드를 차별화하는 것은 바로 묵시성에 있다. 묵시적으로 내 정보가 올라가 나를 위해 정리된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클라우드는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것은 많지 않다. 음악 저장소이던 아이튠스의 클라우드 기능도 아이폰이나 아이팟에 선 없이 동기화하기 위한 음악 주크박스 정도일 뿐 구글 뮤직이나 아마존 클라우드에 비해 근원적 변화를 지닌 것은 아니다. 클라우드로서의 본질을 드러낸 국면이 있는데, 그것은 ‘묵시적 정리’의 힘이다. 음악 레이블과 퍼블리셔들과 계약한 애플사는 개별 사용자의 하드디스크를 스캔해서 발견되는 곡들에 대해 클라우드에도 그 곡이 있다고 쳐준다. 아마존이나 구글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이 굳이 업로드되어 공간을 차지할 필요가 없다. “어디서 생긴 MP3든 상관없어요, 복사한 것이라도 우린 상관 안 해요, 모두 구매한 것으로 쳐줄게요.” 이처럼 자세를 낮춰 내 정보를 훑어보고 내가 지닌 음악이 어느새 클라우드에 존재하게 한다. 중복된 정보가 복제돼 업로드되는 것이 아니라 링크로 처리하는 웹의 철학에 준거해, 깔끔하게 정리된 정보 체계를 묵시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하드웨어의 강등과 세계화
앞으로는 PC나 스마트폰에 내장된 저장 공간은 클라우드라는 최종 저장 공간에 대해 바로 이 캐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강등될 것이다. 데이터는 PC와 스마트폰에서 수시로 읽고 쓰겠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속속 빠져나가 영속적으로 저장되는 곳은 클라우드가 되는 셈이다. 클라우드 아래에서 평등하게 연결된다면, PC와 스마트폰을 변기에 빠뜨려도 다시 건질 필요가 없다. 그 안에는 클라우드로 보내기 전에 잠시 담겨 있던 정보의 찌꺼기만 있을 테니까. 이 자유로움은 캐시로 전락한 PC나 스마트폰이 줄 수 있는 혜택이기에, 요즘 단말기들은 저장 공간의 용량보다 속도를 더 중시하는 추세다. 노트북이 있더라도 사실상 모든 것은 클라우드에 있으니, 대용량 디스크는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한 가지 사고실험을 해볼 수 있다. 인터넷이라 해도 말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이지 사실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의 첨병이 바로 클라우드라 볼 수 있기에, 지역 국가의 네트워크는 세계의 중앙 저장소 클라우드에 대해 캐시 역할에만 충실하게 될 수도 있다. 즉, 클라우드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자원은 클라우드로의 정보 흐름을 돕기 위한 캐시라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등장하는 논지가 있다. 한국이 클라우드 플랫폼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며, 이를 당국이 주도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무의미한 일이다. 인터넷이 키운 클라우드의 플랫폼 위에서 탈공간화한 모든 정보는 광속으로 세계를 누비며 최적의 장소를 찾아가게 되고, 그것이 국가가 키운 무엇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잘해야 또 캐시일 뿐이다. 우리의 모든 데이터가 클라우드로 이행한 날, 우리는 어쩌면 국경이 사라진 이상 세계의 사고실험을 비로소 시작할지 모른다. 국경도 제약도 반목도 없는 통일된 공간 속에 현실의 부조리와 불합리에서 건져 올린 정보만 쌓여가는 모습. 가까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흥미진진하다. 여기에 캐시에 원래 ‘은닉처’라는 뜻이 있음은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머잖은 미래에 내게 은닉된 정보가 클라우드 세계의 정보와 다를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을까? 어쨌거나 지금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세계는 열리려 한다. 확실한 것은 그뿐이다. goodhyun@liv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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