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71개 기업에 온실가스감축계획 할당

 2011/07/12 17:28


[뉴스토마토 최우리기자]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의 30%를 줄이기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9월까지 포스코, 현대차 등 471개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대상 업체별로 구체적인 감축목표가 할당되는 등 세부 실행방안이 마련된다.

12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2020년까지 부문별.업종별.연도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안을 보고해 확정했다.

산업별 감축목표는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산업비 18.2%, 전환 26.7%, 수송 34.3%, 건물 26.9%, 농림어업 5.2% 등 기존 정부안이 유치됐다.

다만 시멘트업종은 정부확정안에서 유일하게 사업목표가 수정됐다.

시멘트 업종의 주요 온실가스 감축방안은 '슬래그 시멘트 비중 확대'였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없이는 2012~2013년 안에 슬래그 시멘트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업계 입장이어서 정부가 단기 감축율을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슬래그 시멘트랑 주원료인 클링커와 석고에 철강산업 부산물인 슬래그를 첨가하는 것으로 슬래그 비중을 높이면 클링커 생산 에너지가 줄어들어 온시락스 배출량이 감소한다.

이에 따라 슬래그 시멘트 비중은 2012년까지 0.5%달성에서 2013년까지로 1년 더 유예됐다.

또 전기.전자(당초 61.7%), 자동차(당초 31.9%) 업종의 경우 에너지 감축목표와 불소계 세척제와 냉매 사용이 감소한 데 따라 비에너지 감축목표를 분리해 표시했다.

이는 이들 업종의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돼 부담이 된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전기.전자와 자동차 업종의 비에너지 회수 책임은 현 자원순환법령 등에 따라 폐기물 부문이 담당하도록 하되 추후 주체 변경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했다.

이에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소나타 하이브리드 K5 하이브리드가 지난 4월에 나왔고 수소연료차, 전기차도 개발중이다. 친환경차 개발이 온실가스감축량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만큼 기술개발을 꾸준히 해가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달 말 발표한 정부안 틀을 유지하면서 기업과 시민사회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며 "이와 함께 에너지 다소비 업종, 중소기업 등 취약 부문에 대한 보완책도 하반기 중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토마토 최우리 기자 ecowoori@etomato.com

 

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2. 19:40


<이건희, 품질 불량에도 매서운 '채찍'>

2011/07/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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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윈, '효율미달' 알고도 산업용 공기압축기 판매경영진단서 적발, 전량 리콜

불량세탁기 계기 '신경영' 이어 제2의 태풍 오나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조직내 부패 척결에 이어 '트레이드 마크'인 품질 경영에도 고삐를 한층 조이고 있다.

삼성그룹 안팎에선 삼성테크윈 사태로 촉발된 조직 문화 재점검 분위기가 품질 문제로까지 번질지 긴장의 기색이 팽배하다.

삼성테크윈은 12일 산업용 공기압축기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이번 리콜은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 결과 일부 제품이 목표 효율에 미달하는데도 출시된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상 제품은 2010년 이전 생산된 300여대.

어찌보면 단순한 리콜 결정이지만, 그룹 안팎에선 이번 리콜을 바라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삼성그룹에서 거세게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쇄신 작업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이번 삼성테크윈 경영진단이었기 때문이다.

애초 임직원 개인 비리 문제로만 알려졌던 것과 달리 감사의 주요 내용이 제품의 품질상 하자였던 것으로 드러나며, 품질 문제에 있어 그룹 차원의 '모럴 해저드'를 다잡는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게다가 그룹 내부에선 이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했던 계기 역시 '불량 세탁기' 문제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이 직원들이 세탁기를 만들면서 금형 불량으로 접촉면이 맞지않자 칼로 플라스틱을 긁어내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우연히 시청하고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바꾸자"는 신경영을 선언했듯, 이번 공기압축기 리콜 사태도 제2의 신경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 통화 품질이 불량한 휴대전화 15만대를 화형식으로 불태우는 등 "품질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 때문에 개인의 부정.부패를 넘어서 제조업의 핵심 가치인 제품의 품질 자체를 문제삼는 상황이 온다면, 쇄신의 강도가 이제까지 일부 임직원 사임 및 감사 기능 강화 등에 머물지 않는 전면적인 수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93년 신경영 선언 직후 불량이 발견되면 누구라도 전 생산 공정을 중단시키는 '라인스톱제'를 도입했던 것과 같이 전면적인 품질 관리 체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는 셈이다.

한 관계자는 "회장께서 '품질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다'고 하셨는데, 삼성테크윈 문제는 이 같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고객을 속이는 행위가 감사 과정에서 적발된 것이고 여기에 개인의 비리 문제까지 맞물려, 현재의 일련의 쇄신을 촉발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경영 선언의 계기가 된 것이 '불량 세탁기' 문제였듯, 이번 사태가 그룹 전체적으로 품질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지침은 아직 없지만 품질 문제가 부각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결국 삼성테크윈 사태 이면에 단순한 부정이 문제가 아니라 품질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며 "이번 리콜은 단순히 한 계열사의 리콜로 볼 일이 아니라, 그룹 전반에 걸쳐 품질 문제를 재고하는 한 시발점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kyunghee@yna.co.kr

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2. 19:37

4G 와이브로 제4이동통신 와이브로
4G 와이브로, 이젠 대세? 반짝 인기?

문화일보 | 기사전송 2011/07/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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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4G) 와이브로의 복권은 무죄!’ 12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한국이 개발한 ‘순수 토종 기술’인 4G 와이브로가 글로벌 표준에서 유럽 국가 등이 주도하는 4G 롱텀에볼루션(LTE)에 밀려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다가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역설적으로 4G LTE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미 국내에 전국망이 구축돼 있고 가격도 저렴한 4G 와이브로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4G 와이브로 전국망을 갖춘 KT의 경우 와이브로 접속 모뎀 ‘에그’(와이브로를 와이파이로 바꿔주는 장치)의 가입자가 최근 50만명에 육박할 만큼 급증하고 있다. 4G LTE가 향후 2년 정도 기다려야 전국망이 갖춰질 예정이고 요금도 비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4G 와이브로가 새삼스럽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4G 와이브로는 4G LTE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최근 KT가 대만의 스마트폰업체 HTC와 손잡고 국내 최초의 4G 와이브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내놓았고, 4G 와이브로를 기반으로 한 ‘제4 이동통신’ 설립 움직임이 활발한 것도 4G 와이브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아직까지 출자금 모집 등에서 난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소기업중앙회 중심의 제4 이동통신 ‘그랜드 컨소시엄’이 내년부터 현재의 4G 와이브로보다 개선된 ‘4G 와이브로 에볼루션’ 기반의 이동통신서비스를 시작할 경우 4G 와이브로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와이브로 에볼루션은 현재 KT 등이 서비스하고 있는 4G 와이브로를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속도가 300Mbps 수준으로 현재의 4G 와이브로보다 8~10배 정도 빠르고 초고속 유선인터넷보다도 3배 정도 빠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망만 깔린 채 무주공산 상태였던 와이브로가 최근 무선 데이터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효용성을 다시 인정받고 있다”며 “그러나 글로벌 표준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에 당국의 강력한 지원 등이 없을 경우 ‘반짝 인기’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조해동기자 haed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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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2. 19:30

 
클라우드, 현실 세계를 빨아들이다
 
 20110712 16:21

 

 

» 클라우드, 현실 세계를 빨아들이다
클라우드 시대, 컴퓨터를 꺼라

‘삶의 업로드’를 통해 기억 등 모든 정보를 구름 너머로 보내는 클라우드 세계의 도래
컴퓨터 위상 하락, 사이버공간 현실 복제력 증가 등 클라우드 시대 사회 변화 총점검

‘현실 속 클라우드인가, 클라우드 속 현실인가.’ 지난 6월6일 애플이 아이클라우드(iCloud) 서비스 선언을 함으로써 ‘클라우드 시대’로 빠르게 변화해나갈 것이다. 그동안 아마존을 비롯해 거대 정보기술(IT)·인터넷 업체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진행해왔지만, 애플의 참여로 대중적 열기가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이제 비로소 구름 너머 저쪽에서 현실 세계로 내려온 듯하다.

‘클라우드 시대’에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그동안 기억의 주기억장치 구실을 하던 컴퓨터의 위상이 크게 줄어들고, 사이버세계의 현실 복제 능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사이버공간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그 목소리를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다. 클라우드는 과연 우리 앞에 어떤 ‘신세계’를 펼칠지 점검해본다._편집자

김국현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





클라우드(Cloud)가 붐이다.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스티브 잡스가 아이클라우드(iCloud)를 발표한 이래 유독 클라우드에 더 신경을 쓴다. 잡스의 상징성과 후광효과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계속 걸리는 단어가 바로 ‘클라우드’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PC에서 스마트 단말기까지 사용자의 눈길과 손끝을 두고 애플과 경합하는 업체들은 이미 클라우드를 에워싼 말을 풀어놓고 있었지만 유독 별다른 말이 없던 애플의 발표로 ‘이제는 모두 클라우드의 흐름을 피할 수 없게 됐나 보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모두 클라우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제 각각의 정의에 따라.

» 지난 6월 6일 스티브 잡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클라우드를 소개하고 있다.

클라우드, 즉 ‘구름’이라는 일반명사는 그 자체로도 다양한 상상과 해석을 부를 수밖에 없다. 컴퓨터 시스템 도면을 그릴 때 네트워크를 두루뭉술 구름처럼 그리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니만큼 명확한 정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이것이 실체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의견이 분분하고, 어느 정도 마케팅 용어인 것도 사실이다.

‘클라우드’라는 용어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중후장대한 서버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에서 기업 내 개발자나 정보기술(IT) 전문가를 대상으로 시나리오를 펼쳐온 것이 대부분이다. 대강 귀에는 익지만 굳이 일상인에게까지 의미 있는 용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클라우드 아래 모두 평등하리라

클라우드 시장은 2006년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유휴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저장·계산하게끔 공개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막됐다. 부담되는 서버를 매번 구매할 필요 없이 종량제로 클라우드의 저장 공간과 계산 능력을 빌려 쓰며, 웹사이트도 게임도 만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하자 일대 유행했다. 시장이 점점 커지니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같이 잉여 자원에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인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차세대 키워드로 정착했다.

저장 공간과 계산 능력을 남에게 맡기고 필요에 따라 임대해 쓴다는 발상은, 기술자뿐만 아니라 사용자마저 반가워할 만하다. 워드프로세서나 스프레드시트 등 오피스 프로그램조차 클라우드 위에 놓고 빌려 쓰거나, 개인의 사진과 자료를 클라우드에 올려둬 일상생활을 저장하는 등 일상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하는 역할로 클라우드의 무게중심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즉, 클라우드가 종량제의 임대 데이터 센터 이상으로 우리 일과 삶에 관련된 무엇이 있음을 암시하는 일이 느리지만 굵직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쐐기를 박는 것이 바로 애플의 선전포고였다. 이로써 PC, 스마트폰 등 사용자에게 접점이 되는 플랫폼과 운영체계(OS)를 지닌 모든 이들은 클라우드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클라우드가 이제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대변화로 구체화됐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 2010년 6월 엘지시엔에스(LG CNS)가 서울 상암동 정보기술센터에 '모바일 클라우드 센터'를 열었다.
클라우드 하면 아마존 같은 일종의 데이터센터 임대 서비스가 떠올랐다. 클라우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를 모두 초기 구매도 확충도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빌려 쓰고 쓴 만큼 돈을 내는 서비스 비즈니스다. 이는 기술 관점에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기에 중차대한 전환이었다. 지금까지는 프로그램을 만든 뒤 서버를 사와서 서버에 올리고, 이 서버를 데이터 센터에 맡기거나 스스로 운영하는 것이 기본 행태였다. 하지만 클라우드의 도래와 더불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구름 위에 업로드하면 바로 가동 완료하게 됐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구름 너머, 그러나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는 종합운동장만 한 데이터 센터에서, 개발자나 IT 기술자가 마음 놓고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올리면 알아서 돌아가고, 서비스가 없어지는 일도 모자라는 일도 없는 테크놀로지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한 것이 클라우드였다. 이 신대륙의 이야기에 먼저 솔깃해하는 이들은 기술자였지만, 이 변화가 모두의 것이 되리라 직감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같은 전산 자원이 구름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그 얼개를 따라 우리 생활도 디지털이 되어 얼마든지 따라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구름을 볼 수 있듯, 디지털 생활도 그렇게 우리를 지켜보듯 떠 있는 클라우드 위로 빨려들어간다.

그동안 PC나 매킨토시를 애지중지 안고 다니고 책상에 모셔놓은 이유는 그 속에 우리 일과 삶의 발자취가 쌓여갔기 때문이다. 행여 하드디스크라도 망가지게 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수십만원의 복구비를 아끼지 않던 이유도 컴퓨터는 오랜 기간 우리 삶의 허브가 돼왔고, 그 흔적이 묻은 기계였기 때문이다.

기억의 허브, 바로 옆 컴퓨터에서 구름 너머로 이동

그 속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USB로 연결해 정보를 퍼나르거나 ‘동기화’했다. 컴퓨터는 아날로그 삶을 디지털로 바꾸며, 네트워크 저 너머로 이어주는 허브였다.

클라우드의 등장은 ‘중앙처리장치(CPU)’가 강등되는 사건이고, 동시에 디지털 생활의 구심점이 옮겨지는 일이다. 책상 위 컴퓨터에서 클라우드로 말이다. 지금까지 스마트폰, PMP·MP3 플레이어, 태블릿 등 모든 새로운 장비에는 기본적으로 PC가 한 대쯤 있어야 작동이 가능했다. PC는 ‘모함’(母艦)이 되어 수많은 ‘주변기기’를 관리·감독하며 우리가 디지털 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왔다. 윈도와 아이튠스가 그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새 PC, 매킨토시 같은 컴퓨터 외에 스마트폰이니 아이패드니 하는 수많은 창이 생겨나고, 이 창들은 모두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바라보게 됐다. 컴퓨터는 결국 인터넷 저 너머를 보기 위한 창임을, 아니 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모든 개별 단말기가 파견돼 구름 저 너머와 바로 소통하게 된 시대에 번잡하게 모함이 주둔하고, 그 모함을 통해서만 통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클라우드의 등장은 PC가 인터넷 너머, 구름 저편을 바라보기 위한 또 하나의 화면으로 강등되는 대사건이다.

지난 수십 년간 경쟁하듯 PC 하드디스크 용량은 해마다 늘어왔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이제 이 군비 경쟁은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PC 저 너머, 더 안전하고 믿음직스러운 구름 위 저장소에 내 모든 정보가 담긴다면 굳이 번거롭고 위험하게 직접 관리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스마트 기기류는 PC 보조기기 역할이었다. 귀찮지만 아이튠스 등 PC상의 무언가를 통해 자신이 의지하고 때때로 돌아갈 모함을 인지해야 했다. 그러나 네트워크 접속이 당연해진 시대, ‘스마트하다’는 것은 스스로 독립 활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PC든 스마트폰이든 태블릿이든 모두 인터넷에 연결되었으면, PC를 바라보지 말고 인터넷 저편의 클라우드를 다 함께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기기와 단말기에 클라우드와 연결하기 위한 부분을 튼실하게 만들면서, PC 없이 ‘일과 삶의 업로드’라는 독자적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클라우드 아래에서는 누가 또 다른 누구의 대장이 되지 않는 기기들의 평등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클라우드 덕에 모든 CPU와 액정은 단지 속도와 크기만 다를 뿐 공평한 구성원으로 똑같이 활약할 터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여전히 모든 데이터는 PC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사진·연락처·문서 등 많은 부분은 사용자 조작 없이도 클라우드로 넘어간다. 내 일거수일투족은 내가 쓰는 단말기 곳곳에 흔적만 남긴 채 클라우드로 집합하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케이블을 연결하지 않아도 어느새 내 PC에서 하나하나 볼 수 있다. 스마트폰 사진이 클라우드를 통해 태블릿 PC와 노트북을 넘나드는 것처럼 내 생활과 일은 구름으로 빨려들어간다. 그곳은 얼마나 광활할까? 내가 인간으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의 총량을 이미 넘는 용량이 무료나 염가로 제공되고 있다.

사업자로서 비용은 아무래도 좋다. 무어의 법칙에 의해 컴퓨터 자원은 해가 갈수록 싸지지만, 기억·추억·삶, 즉 우리의 데이터는 해가 갈수록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가두어두는 것은 강력하게 충성도를 끌어올 수 있는 길이다. 내 인생이 그 안에 있다면 그곳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누군가가 클라우드에서 비전을 봤다면, 그래서 클라우드에 투자하려 한다면 바로 이 타인의 인생을 가두어두는 일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초거대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클라우드


» 인터넷으로 채팅하고 있는 사용자.
타인의 인생? 여기서 타인이란 무엇이고, 그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우리 집 PC에는 가족에 대한 정보만 있었지만, 클라우드에서 누가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한 정보를 가두어둘 때 그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자연스럽게 생각은 국경으로 구획된 현실 세계의 의미로 흘러간다. 구름이 국경을 모르고 바다와 대륙을 넘어 흐르듯, 현재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클라우드는 대부분 이익과 격차를 찾아 세계를 달리며 거점을 만드는 초거대 다국적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클라우드 맹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규모 온라인 서비스를 세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갑자기 클라우드라는 제국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미 투자한 여력을 재활용하는 것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즉, 다국적기업이라는 거대 생명체가 시대 변화에 적응한 자연스러운 결과다.

어쨌거나 한반도 동해안에서의 추억과 그날의 일기도 미국 서해안이나 노스캐롤라이나의 데이터 센터로 빨려들어가지만 어떠한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인터넷이 공간적 거리나 지정학적 격차를 없앴고, 소셜 네트워크가 전세계 인민의 소통과 각성을 가능하게 했듯이, 클라우드는 우리의 일과 삶을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가상 공간으로 흡수해버리는 ‘세계적 사건’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을 IT의 박진감 넘치는 발전에 의해 지구 반대편의 사태나 사건이 내 의사 결정에 순간적으로 반영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라 이해한다. 클라우드가 몰고 온 변화란 바로 ‘정보화로 가속화하는 세계화’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대적 변화의 또 다른 변종에 불과하다.

이 흐름에 자극받은 국지적 클라우드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 설비 역량을 지닌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과 각 통신사들이 경쟁적으로 클라우드를 제공하면서 N드라이브, 다음클라우드, 유클라우드 등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며 클라우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제품과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기존 웹하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동시에 접속해 사용성이 보편화된 점은 다르다. 하지만 플랫폼이나 OS 등 사용자 체험의 근간을 이루는 부분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애플과 구글처럼 이미 하드웨어나 OS를 소유했거나 교섭력을 지닌 이들에 비해, ‘클라우드 아래의 모든 이에게 평등’과 같은 초월적 메시지를 내는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용량 온라인 저장소를 만드는 것은 쉽지만 디지털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조금도 거치적거리지 않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클라우드와 이어지는 것은, 플랫폼을 모두 일사불란하게 도열할 수 있는 규모에서 벌이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마치 CPU와 하드디스크 사이의 신호가 자동으로 오고 가듯 현실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흡수해가는 방식이나 안정성이 회로 수준이 돼야, 잡스의 주장대로 ‘그냥 하면 된다’(It just works)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현실을 빨아들이는 회로는 그렇게 움직인다.

클라우드가 ‘현실의 흡수 복제’라는 면에서 기존 가상공간 논의와 다른 점은, 가상세계로의 명시적 이행을 뜻하는 ‘접속’ 대신 현실의 묵시적 복제가 우리 인지와 관계없이 되는 것이다.

클라우드 이야기가 없던 시절에도 우리 일상은 네트워크로 넘어갔지만, 그마저 ‘동기화’나 ‘업로드’라는 명시적 행위로 이루어졌다. 네트워크 컴퓨팅이니,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니, 유틸리티 컴퓨팅이니 하는 그동안 오고 간 비슷한 유행어들과 클라우드를 차별화하는 것은 바로 묵시성에 있다.

묵시적으로 내 정보가 올라가 나를 위해 정리된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클라우드는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것은 많지 않다. 음악 저장소이던 아이튠스의 클라우드 기능도 아이폰이나 아이팟에 선 없이 동기화하기 위한 음악 주크박스 정도일 뿐 구글 뮤직이나 아마존 클라우드에 비해 근원적 변화를 지닌 것은 아니다.

클라우드로서의 본질을 드러낸 국면이 있는데, 그것은 ‘묵시적 정리’의 힘이다.

음악 레이블과 퍼블리셔들과 계약한 애플사는 개별 사용자의 하드디스크를 스캔해서 발견되는 곡들에 대해 클라우드에도 그 곡이 있다고 쳐준다. 아마존이나 구글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이 굳이 업로드되어 공간을 차지할 필요가 없다.

“어디서 생긴 MP3든 상관없어요, 복사한 것이라도 우린 상관 안 해요, 모두 구매한 것으로 쳐줄게요.” 이처럼 자세를 낮춰 내 정보를 훑어보고 내가 지닌 음악이 어느새 클라우드에 존재하게 한다. 중복된 정보가 복제돼 업로드되는 것이 아니라 링크로 처리하는 웹의 철학에 준거해, 깔끔하게 정리된 정보 체계를 묵시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하드웨어의 강등과 세계화

»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데이터 파일 저장 장소.
가끔 컴퓨터 부품 사양에 ‘캐시’(Cache)라는 개념이 있다. 일반인은 대부분 존재조차 모르지만, 느린 기억 장치의 성능 향상을 위해 마련된 전용 소용량 초고속 기억공간을 뜻한다. 데이터가 자주 쓰이게 되면 여기 잠시 머물며 빠르게 처리되어 전체적 성능 향상을 꾀하는 유용한 곳이다.

앞으로는 PC나 스마트폰에 내장된 저장 공간은 클라우드라는 최종 저장 공간에 대해 바로 이 캐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강등될 것이다. 데이터는 PC와 스마트폰에서 수시로 읽고 쓰겠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속속 빠져나가 영속적으로 저장되는 곳은 클라우드가 되는 셈이다. 클라우드 아래에서 평등하게 연결된다면, PC와 스마트폰을 변기에 빠뜨려도 다시 건질 필요가 없다. 그 안에는 클라우드로 보내기 전에 잠시 담겨 있던 정보의 찌꺼기만 있을 테니까.

이 자유로움은 캐시로 전락한 PC나 스마트폰이 줄 수 있는 혜택이기에, 요즘 단말기들은 저장 공간의 용량보다 속도를 더 중시하는 추세다. 노트북이 있더라도 사실상 모든 것은 클라우드에 있으니, 대용량 디스크는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한 가지 사고실험을 해볼 수 있다. 인터넷이라 해도 말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이지 사실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의 첨병이 바로 클라우드라 볼 수 있기에, 지역 국가의 네트워크는 세계의 중앙 저장소 클라우드에 대해 캐시 역할에만 충실하게 될 수도 있다. 즉, 클라우드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자원은 클라우드로의 정보 흐름을 돕기 위한 캐시라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등장하는 논지가 있다. 한국이 클라우드 플랫폼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며, 이를 당국이 주도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무의미한 일이다. 인터넷이 키운 클라우드의 플랫폼 위에서 탈공간화한 모든 정보는 광속으로 세계를 누비며 최적의 장소를 찾아가게 되고, 그것이 국가가 키운 무엇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잘해야 또 캐시일 뿐이다.

우리의 모든 데이터가 클라우드로 이행한 날, 우리는 어쩌면 국경이 사라진 이상 세계의 사고실험을 비로소 시작할지 모른다. 국경도 제약도 반목도 없는 통일된 공간 속에 현실의 부조리와 불합리에서 건져 올린 정보만 쌓여가는 모습. 가까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흥미진진하다. 여기에 캐시에 원래 ‘은닉처’라는 뜻이 있음은 묘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머잖은 미래에 내게 은닉된 정보가 클라우드 세계의 정보와 다를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을까? 어쨌거나 지금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세계는 열리려 한다. 확실한 것은 그뿐이다.

goodhyun@live.com

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2. 19:24

`반값통신` 제4이통 이번엔 뜰까

매일경제 | 입력 2011.07.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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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통신` 제4이통 이번엔 뜰까
와이브로(휴대 인터넷)를 활용해 최소 30%에서 최대 50%까지 요금이 저렴하고 무제한 데이터 통신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제4 이동통신' 사업이 과열 조짐을 보이면서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4 이동통신은 정부와 국민, 사업자가 상생할 수 있는 사업이지만 무리한 추진으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12일 통신업계는 다음달 중순께 중소기업중앙회를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과 두 차례 사업을 신청한 경험이 있는 한국모바일인터넷(KMI)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제4 이동통신' 사업권을 신청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기중앙회 컨소시엄 측인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KMI 측이 모두 "다음달(8월) 중순께 방통위에 사업권을 신청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중기중앙회는 현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업권 신청을 준비하고 있으며, KMI도 주주 구성과 사업계획서를 정비해 8월 사업권 삼수(두 차례 신청해 재무구조 부실로 탈락한 경험이 있음)에 도전할 예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다음달 사업자 신청이 들어오면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심사해 연내에 결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시중 위원장을 포함해 전체 방통위가 시장에 '메기' 노릇을 할 사업자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시장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13년 과점'이 통신요금 인하에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중앙회가 컨소시엄을 성공적으로 꾸려 도전한다면 제4 이동통신 사업의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제4 이동통신은 와이브로(모바일 와이맥스) 전국망을 구축해 모바일 인터넷과 음성통화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이통 3사와 다르다. 모바일 데이터가 중심이고 음성통화는 사실상 인터넷전화(VoIP) 개념이기 때문에 통화 요금이 싸다.
중소기업중앙회와 KMI 측도 '저렴한 통신'을 무기로 내세우면 가입자 100만명 조기 확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승택 전 장관은 매일경제신문과 통화하면서 "기존 이통사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는 3.9세대지 4세대(G) 서비스가 아니다"며 "와이브로 어드밴스트 장비를 구축하고 일본 미국 대만 업체들과 전용 단말기(스마트폰)를 공동으로 수급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국망을 구축하기 위해 최대 5조원까지 투자 비용이 필요한 사업을 중소기업 연합 컨소시엄이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동통신은 끊임없는 유지보수와 업그레이드(기능 향상)가 필요하기 때문에 해마다 수조 원대 투자 비용이 필요하다. 가입자 900만명을 보유한 LG유플러스도 올해 1조7000억원을 투자할 정도다. 사업권을 따낸다면 4G 와이브로를 세계에서 처음 상용 서비스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불가피하다.
와이브로를 이용한 전국적 음성 서비스는 세계적으로 성공 사례가 드문 것도 악재다. 러시아 요타와 같이 와이브로 사업자들이 LTE로 전환하고 있어 글로벌 생태계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현재 2개 후보자가 힘을 모아 명실상부한 '그랜드 컨소시엄'을 만들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사업권을 받을 수 없어 결국 '주가 띄우기'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사업권 신청이니만큼 제4 이동통신 사업이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구상 수준인 섣부른 계획을 발표하기보다는 재무 구성이나 실현 가능한 사업성 확보를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재권 기자]
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2. 18:21


안철수 서울대 융합대학원장 ‘중앙비즈니스 포럼’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2011.07.12 00:27   “청년에게 실패할 자유 허하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6월 27일 제1회 중앙비즈니스 포럼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 원장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안철수(49)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세계적인 천재도 10개 아이디어 중 한 개만 성공시키는데, 우리는 천재 한 명이 아이디어 하나 냈다가 실패하면 매장당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싹수 있는 사회일수록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하지만 우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를 피한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7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중앙비즈니스(JB) 포럼’에서다. 포럼은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들의 학술모임이다. 안 원장은 또 “이대로 가다간 삼성 같은 대기업도 망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안 원장의 ‘대기업 패망론’은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정보기술(IT)기업 창업열풍에서 왜 한국만 비켜 있는지를 설명하는 도중 나왔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이 경쟁국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데 발목을 잡고 있으며 삼성 같은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이 IT 창업 열풍과 괴리돼 있는 이유는.

 “네 가지다. ▶창업자의 실력 부족 ▶열악한 창업 인프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좀비(죽지 않고 살아있는 시체) 이코노미다(그는 좀비 이코노미 설명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한국에서는 벤처투자가 부진하다 보니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으로 은행 빚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부진해도 빚 때문에 접지 않는다. 그 대신 덤핑을 하고, 정부의 눈먼 돈을 지원받아 가며 일종의 ‘좀비 기업’이 돼 생명을 연명해 간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행태도 좀비 이코노미에 한몫한다. 괜찮은 벤처가 있으면 인수합병(M&A)을 해야 벤처투자자가 돈을 회수할 수 있는데, 그냥 그 기업과 독점계약을 맺고 소위 ‘삼성 동물원’ ‘LG동물원’ 식으로 동물원에 가두니까 벤처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 그래도 안 원장 창업 시절(안철수연구소 창업시점이 1995년)보다 여건이 좋은 것 아닌가.

 “사회 인센티브 시스템이 굉장히 나빠졌다. 젊은이들이 98년 외환위기 전에는 공대에 가려 했는데, 이젠 완전히 돌아섰다. 요즘은 똑똑한 사람들이 리스크를 더 감수하지 않고 안전지향적으로 간다. 50년 전에 우린 꼴찌에서 3등이었다. 그때 우리 생존방식은 가진 게 없으니 남들이 해놓은 거 열심히 쫓아가서 싹수가 있으면 올인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중국이 우리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젠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대기업이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기업문화를 바꿔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서 벤처기업이 다양한 실험을 하게 하고, 그중에서 성공한 벤처를 인수하면 삼성전자도 혁신적인 기업이 된다. 대기업은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동물원’을 만들지 않는 게 맞다.”

 -교수로서 무엇을 가르치나.

 “세상이 안 바뀌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창업을 권한다. KAIST 교수였을 때 한 학기당 세 명꼴로 창업했다. 교수가 돼서 제일 좋은 게 사람을 바꿀 수 있어서다.”

 -창업에서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이 모여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점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혼자서 창업하기보다 두 명 이상이 창업하는 것이 성공확률이 훨씬 높다. 2~4명이 제일 좋다.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창업자들의 만장일치가 좋은데, 사회학적으로 보면 5명부터는 그게 잘 안 된다.”

 -안 원장 자신은 창업 초기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나.

 “어느 날, 친구들은 다들 교수 하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더라. 그런데 헤어나오는 노하우가 생겼다. 동기동창과 비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위를 쳐다보면 힘들지만 아래를 보면 내가 회사를 만들어 매출도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왼쪽)과 그룹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들.

 -제일 어려웠던 점은.

 “사업 초기 직원들 월급 줄 길이 없어 은행 직원들에게 싹싹 빌어서 어음 깡(할인)을 해 마련했다. 그때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월 초만 되면 괜히 불안하다.”

 -어떤 인재를 선호하나.

 “사람을 뽑을 때 딱 하나만 본다. ‘나는 틀릴 수 있다(I may be wrong)’고 말하는 사람이 좋다. 다른 사항은 볼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 실패 확률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지금 한국 대학들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공부기관이다. 목표가 연구성과에 집약돼 있다. 좋은 대학일수록 학생들을 방목한다. 학생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교수는 바보가 되고 있다. 대학이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희망이 있다. 얼마 전 KAIST의 자살 사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KAIST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터진 거다. 자살이 멈춘 것은 가족·친지들이 안부 묻고 관심 보이니까 그런 거다. 실질적인 조치가 없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학교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

 -정치참여 제의를 많이 받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참여해서 해야지 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 아닌가.

 “정치는 체질에 안 맞는다. 내겐 권력 욕심이 없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쾌감이 아니고 짐이다. 괜찮은 분들이 (정치판에) 가서 그냥 나온다. 혼자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함께 바꿀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그런 때가 올까.”

 - 그냥 메시지만 던지겠다는 건가.

 “메시지도 던지지만, (그냥 메시지만 던지고 있자니) 화도 조금씩 나고 있다. 나 자신을 보면 정치인과 안 맞는 게 확실한데, 현실을 보고 있자니 점점 화가 난다.”

정리=권희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2. 09:13


     유럽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 
                                                                    서경석목사


  안녕하십니까? 서경석목사입니다. 저는 지난 6월 13일부터 18일까지 유럽의 체코와 독일, 그리고 프랑스를 돌아보았습니다. 세 나라를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한 마디로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체코의 프라하는 이번에 처음 방문했습니다. 유럽을 가면 한번은 꼭 가보아야 할 도시입니다. 그런데 체코의 기독교인은 3%에 불과합니다. 가톨릭교인이 35%라고는 하나 실제로 출석하는 교인은 1.5%에 불과합니다. 개신교도 교회가 3백개 밖에 되지 않고 교인수는 1%를 조금 넘을 뿐입니다. 
  프라하는 얀 후쓰(John Huss 1369-1415)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도시입니다. 당시 보헤미아의 국민들은 똘똘 뭉쳐 얀 후쓰를 지지했습니다. 그가 1415년 콘스탄스종교회의에서 화형당한 후에도 보헤미아 국민들을 똘똘 뭉쳐 가톨릭에 처항했습니다. 이렇게 14세기에는 온 국민이 기독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3%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기독교가 몰락했는가? 저는 첫째 이유를 가톨릭교회의 실패에서 찾고 싶습니다. 얀 후쓰 이후 보헤미아에서 개신교는 완전히 궤멸 당했고 그후 가톨릭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억압자의 종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가톨릭의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진짜 교인은 극히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원인은 체코가 오랫동안 공산주의 체제 하에 있은 때문일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교회는 크게 부흥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에 왜 개신교가 부흥하지 못했을까? 셋째 이유는 개신교 목사들이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는 준공무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체코에서는 얀 후쓰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도 개신교가 부흥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는 공무원 목사들에게 전도의 열정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체코교회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역할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체코에서 복음이 잘 전파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처럼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전파될 수 있습니다. 체코 국민소득은 2만불로 한국과 비슷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면 반드시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체코에서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는 목사님 10-20명을 한국에 초청하여 <나눔과 기쁨>의 작은 교회 목사들이 예수님처럼 살고자 분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영성 프로그램에 흠뻑 젖게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생각에 박순오목사님도 적극 찬성하셨고 체코의 한국인 선교사도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유럽 복음화문제를 절대로 외면할 수 없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유럽이 반드시 우리의 선교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나서기 보다는 체코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선교적 열정을 되살리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나눔과 기쁨>투어팀은 체코를 떠나 헤른후트(Herrnhut)를 방문했습니다. 헤른후트는 모라비안교도들이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그곳에서부터 경건주의 운동이 세계로 퍼져나간 곳입니다. 지금도 헤른후트의 교회는 다른 지역과 달리 신앙심이 깊은 교인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독일교회에는 체코와 마찬가지로 교인들이 없습니다. 지역적으로 남쪽은 개신교가, 북쪽은 가톨릭이 강합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80%는 루터교회입니다. 그렇지만 루터교인 중에서 교회에 매주일 출석하는 신도는 1.5%에 불과합니다. 이점은 가톨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97%의 독일인들은 예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종교세를 내어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디아코니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세로 목사들이 봉급을 받습니다. 말하자면 루터교회 목사님들은 준 공무원입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두달동안 교회문을 닫고 프랑스 남부해안으로 바캉스를 떠납니다. 그러니 루터교회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반면에 브래드런 처치, 침례교, 오순절교회, 모라비안 교회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목사들은 교인이 내는 헌금에서 봉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가 목사의 봉급을 주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독일교회는 그다지 위기의식이 심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독일교회는 신학적 토대도 튼튼하고 자존심도 강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한국인목사들은 독일교회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눔과 기쁨>이 독일교회의 앞날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저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행을 마틴루터가 95개 조항을 내걸었던 비텐부르크 성당으로 안내했던 베를린의 한인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독일교회의 복지 프로그램이 제 아무리 잘 되어 있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 예수님의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그분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고 주님을 영접하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하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도 제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독일교회와 진지한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루터교회와도 사귀고 오순절교회와도 사귀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파리장로교회의 이극범목사님으로부터 프랑스 교회에 대해 들었습니다. 프랑스 개신교가 제일 어렵고 힘든 상황입니다. 프랑스는 가톨릭의 나라입니다. 프랑스 아비뇽에 교황청이 있기도 했습니다. 한때 프랑스의 개신교 인구가 46%가 된 적도 있었지만 이들 프랑스개혁교회(위그노)는 1572년의 대학살 등 가톨릭의 혹독한 탄압을 받으면서  거의 사라졌다가 18세기 말에 가서야 종교의 자유를 회복하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역시 신구교를 합해 출석교인 숫자가 3%를 넘지 않습니다. 개신교는 훨씬 더 약합니다. 프랑스에서 개신교 목사는 독일처럼 종교세에서 봉급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목사 지망생이 적고 교회재산은 많아 교회재산을 팔아 봉급을 받고 있어 봉급걱정이 없습니다. 결국 종교세에서 봉급을 받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셈입니다.
  왜 프랑스의 상황이 좋지 않은가?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유럽의 영적인 문제점들이  지성주의,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종교적 다원주의에서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때문에 인본주의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위그노 대학살 같은 신구교간의 오랜 전쟁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러다 보니 영적인 갈급함을 느끼면 차라리 떼제공동체는 찾아도 교회는 찾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금 유럽에서는 이슬람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은 기독교인 인구가 2%인 반면에 이슬람은 16%라고 합니다. 어찌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을 것입니까?

  우리가 당장 유럽교회의 쇠퇴를 막을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더라도 쇠퇴문제에 대한 분명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유럽교회에 우리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로 2013년 WCC총회를 맞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가 더 열심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더 열심히 예수님처럼 살고자 분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삶과 행동을 보고 “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하고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유럽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더 열심히 예수님처럼 살도록 결심하게 해 줍니다. 앞으로 매년 6월이면 팀을 짜서 유럽여행을 가도록 하십시다. 다만 해를 거듭할수록 관광보다는 유럽교회들이 예수님처럼 살고자 분투하는 삶의 현장이 어디 있는지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교회와의 교류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의 교회는 보지 않고 옛날의 역사흔적만 보는 것은 허전하기 그지 없습니다.     
  동역자 여러분, 내년에도 유럽으로 떠납시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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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2. 08:50

외벽, 전투기와 충돌 시험에 5㎝ 긁힘만
신월성 원전 1·2호기 건설 현장 가보니…
자재 95%가 국산… 사용후 핵연료 외북에 격리
1호기는 연말 본격 가동
경주=전태훤기자 besame@hk.co.kr       
완공을 앞둔 경북 경주시 양북면 신월성 원전 1·2호기 건설 현장이 지난 8일 공개됐다. 원자로를 둘러싸는 돔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들에 대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왼쪽 사진) 신월성 원전 1호기의 원자로 내부 모습. 다음달 핵연료가 장전돼 시운전에 들어간 뒤 올 연말께 본격 가동된다. 대우건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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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을 앞둔 경북 경주시 양북면 신월성 원전 1·2호기 건설 현장이 지난 8일 공개됐다. 원자로를 둘러싸는 돔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들에 대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왼쪽 사진) 신월성 원전 1호기의 원자로 내부 모습. 다음달 핵연료가 장전돼 시운전에 들어간 뒤 올 연말께 본격 가동된다. 대우건설 제공 
 

신월성 원전 1호기의 원자로 내부 모습 
 
  
관련기사일본 후쿠시마(福田)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국내에서 시공 중인 원전 현장의 안전성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8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에 위치한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1ㆍ2호기 건설현장. 연말 본격 가동을 앞둔 1호기 현장은 막바지 준공 채비로 분주했다. 전체 2기 중 1호기가 다음달 연료봉을 장전하고 시운전에 들어간다. 기능에 이상이 없는지를 최종적으로 살피는 과정이다.

2호기는 내년 하반기 중 시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다. 1기당 전력생산량은 시간당 100만㎾로, 가정용 30w 전구 약 3,330만개를 동시에 밝힐 수 있는 용량이다. 1ㆍ2호기가 준공돼 본격 가동되면 경북 전체 필요전력의 95%를 담당하게 된다.

신월성 원전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진이나 해일, 내부 폭발 위험성에 대비한 안전설비를 크게 강화했다. 우선 일본 원전의 경우 원자로 격납건물이 사각형 구조여서 원자로 내에서 발생하는 수소가 구석에 모여 폭발했지만, 우리 원전은 수소가 분산되는 돔형태인데다, 크기도 일본 원전의 5배여서 폭발 위험성이 거의 없다는 것.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 수소 폭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수소제거설비를 당초 6개에서 21개로 늘렸고, 비상용발전기 건물의 출입문을 방수문으로 교체해 해일 피해를 예방하도록 했다.

격납 건물의 외벽도 120㎝ 두께의 원통형 특수 철근으로 지어졌는데, 실제 외벽은 전투기와 충돌시험을 해보니 5 ㎝ 정도의 긁힘만 생겼을 정도로 튼튼했다고 한다.

또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사용 후 핵연료를 원자로 내에 뒀다가 문제가 됐지만, 신월성 원전은 외부 건물에 격리시켜 그런 위험을 원천 차단했다.

신월성 1·2호기 현장소장인 대우건설 유홍규 상무는 "동력이 완전 상실되더라도 보조발전기를 통해 원전 보호장치를 가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원전 내부도 원자로용기를 감싸는 5중 보호장치를 마련해 만일의 사고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한국형 원전은 별도의 증기발생기가 원자로 안에 설치돼 있어 지진 등 외부 충격으로 가동이 중단되더라도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증기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신월성 원전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우리 독자기술과 장비가 대거 투입된 한국형 원전이다. 원자로는 두산중공업이, 원전연료는 한전원자력연료가 공급하는 등 원전 건설에 들어간 자재의 95%가 국산이다.

고온의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를 얻기 위해 대우건설이 거가대교 건설에서 선보였던 침매기술도 쓰였다. 가로 12m, 세로 8m, 길이 10m의 침매터널 123개를 바다 밑에 깔고 그 안에 수로를 놔 원전에서 860m 떨어진 지역의 심해심층수를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냉각수 취수를 위해 침매기술이 활용된 전례는 있지만, 860m 심해에서 원전까지 물을 끌어들이기는 세계 처음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2015년이면 원전 시공 기술과 자재 모두 100% 자립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국내 기술력과 안전시공 실적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430기가 추가 건설될 세계 원전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2. 07:37


48 Hours In HELL!

여태껏 나에게 알려진 가장 흥미로운 소생(거의 죽기직전 살아남)의 사건들 중의 하나는 George Lennox의 경우였다.

그는 Jefferson County에서 악명 높은 말 도둑이었다.
그는 두 번째 형기를 복역하고 있었는데 Sedgwick County도 처음 죄목과 같은 말 도둑 범죄자로 그를 투옥시켰다.

1887년과 1888년 사이의 겨울동안 그는 광산에서 근무했다.
그가 일하고 있는 장소는 위험한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책임소장에게 보고하여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소장은 그 장소가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Lennox에게 돌아가서 일할 것을 명령했다.

순종은 했지만 그 죄수는 1시간이상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그는 완전히 매몰되었다.
이런 상태가 2시간동안 계속 되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는데도 죄수가 오지 않자 수색을 실시했고 곧 장작더미 아래서 그가 발견되었다.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지상으로 옮겨져 교도소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지만 의사는 그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의 유물들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몸을 씼기고 옷을 입혀 매장할 준비를 했다.
또 그의 관이 만들어져 병원에 이송 되었고, 목사가 장례식에 앞서 마지막 애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도착했다.
병원집사는 두명의 죄수에게 바닥에 있는 시체를 들어서 그 방을 가로질러 가지고 온 다음, 관속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그 지시를 따라서 한명은 머리를, 다른 한명은 다리를 들어 그 방에서 나와 반쯤 걸어 나왔을 때였다.

머리 쪽을 들고 있던 죄수가 실수로 타구(침이나 소변 따위를 담는 그릇)에 걸려 비틀거렸고, 중심을 잃고 그 시체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죽은 사람의 머리가 마루바닥에 부딪쳤는데, 순간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깊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그의 눈이 떠졌고 다시 살아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즉시 주위에 있던 사람이 의사를 부르러 갔고 약 30분 뒤에야 의사가 도착했다.
그 때는 그 죽었던 죄수가 물 한 컵을 요구해서 마시고 있던 중이였다.
곧바로 관이 치워졌고 후에 다른 죄수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의 장례복장도 치워졌는데 나중에 죄수복으로 대용했다.
검진 중에 그의 다리 중 하나는 부러졌고 다른 하나는 타박상을 입었음이 발견되었는데, 그는 병원에 약 6개월 동안 입원해 있다가 다시 일하러 나가게 되었다.

나는 동료 광부로부터 분명히 죽었지만 다시 소생했다는 그의 특별한 경험을 듣게 되었다.

호기심이 자극되자 나는 Lennox와 아는 사이가 되어 직접 그의 입으로부터 경험담을 듣고 싶어졌다.

마침내 그 기회는 왔다. 그 광산이 없어지고 난 후, 나는 매년 서류를 보관하는 교도소 사무실 중 하나를 찾아가서 면밀히 조사했다.

그러자 어느 한 날에 그 사람의 소생에 관하여 의논이 된 서류가 발견되었다.
때마침 그 사람이 우연하게도 이 사무실을 지나쳤는데 날 지적하는 것이었다.
나는 곧 그 노트를 그에게 쥐어 주었고 내가 일하는 곳으로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부탁을 들어주었고 우린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입으로 놀라운 경험을 말해 주었다.

그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30살 남짓 보였다.
그는 상습범이었지만, 교육은 잘 받았고 천성적으로 매우 영리해 보였다.

그의 경험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가 죽어 있을 동안에 일어난 것이었다.

나는 속기사가 되어 그의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아침 내내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무서운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았죠.
난 정말 감정이 너무 불안해서 나의 광산 사장인 Grason씨에게 달려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말했고, 석탄을 파고 있는 곳에 와서 조사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조사를 한 것같은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나보고 돌아가서 일을 계속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위험은 전혀 없다면서 말이죠.
그는 내가 성미가 까다로워졌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나는 돌아가 일을 했고 1시간 가까이 뭔가를 계속 파내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매우 어두워졌어요.
그 때, 거대한 철문이 휙 열리더니 내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내가 죽었고 다른 세상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는 아무도 볼 수 없었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어요.
내가 모르는 뭔가에 의해 나는 그 입구로부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죠.
그리고 먼 거리를 걷고 나자 어떤 넓은 강의 강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빛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별이 떠있는 밤 정도의 그런 밝기 정도였죠.
나는 이 강둑에 오래 남아 있지 않았어요.

곧 바로 물에서 노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나룻배에 어떤 사람이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노를 저어 왔죠.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날위해 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보트에 타서 건너편으로 노를 저어 가게 될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순종했습니다.
그리곤 아무런 말이 없는 상태가 계속 됬어요.

나는 그에게 그가 누구이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져 있는것 같았죠.
나는 단 한마디조차도 말할 수 없었어요.
마침내 우리는 반대쪽 물가에 다다랐고
난 보트에서 내렸는데 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홀로 남겨지게 되었고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내 앞을 바라보자 어두운 계곡으로 통하는 두개의 길을 보게 되었죠.
하나는 넓은 길이었는데 걷기에 잘 닦여진 것 같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좁은 길이었는데 다른 방향으로 길이 나 있었죠.
나는 본능적으로 잘 닦여진 길을 쫓았습니다.

멀리 가진 않았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았죠.
가끔 빛이 먼 거리에서 섬광처럼 번뜩였지만
이런 식으로 나는 안내되어 계속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나는 말로 표현하기가 정말 불가능한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단지 당신에게 그가 무시무시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는 약간의 idea만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다소 닮기는 했지만 내가 보아왔던 인간들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그는 키가 최소 3m는 되어 보였고 등에는 거대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팠었던 석탄만큼이나 검었고 완전히 걸친 것이 없는 상태였죠.
그의 손에는 창이 있었는데 창자루가 무려 4.5m나 되었습니다.
그의 눈은 숯불처럼 빛났고
그의 이는 진주처럼 하얀색이었는데 길이가 1인치나 되는 것 같았어요.
그의 코는(그것을 코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매우 크고 넓고 납작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은 매우 거칠고 굵고 길었죠.
그것은 그의 육중한 어깨에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동물원에 있는 사자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보다 훨씬 더 컸는데,
실제로 그런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내가 그를 첨 본 것은 섬광의 번쩍임 동안이었죠.
나는 그를 보자마자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었습니다.
그는 마치 창으로 날 관통시키려는 것처럼 그것을 들어 올렸습니다.
갑자기 내 몸이 굳어졌습니다.

그는 내가 여태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름끼치는 음성으로 자기를 따라 올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는 나의 여정을 인도하려고 보내진 존재였습니다.
난 따라갔습니다.
그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길을 걷자 한 거대한 산이 우리 앞에 높이 치솟은 채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우리 정면에 있는 부분은 거의 수직에 가까웠는데 마치 하나의 산이 반으로 잘라져 한 면이 제거된 듯한 모습이었죠.
이 수직벽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지옥이다.’

나의 guide는(저승사자라고 이해하시면 될겁니다)
이 수직벽면에 이르자 그의 창자루로 세 번의 커다란 긁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한 거대하고 육중한 문이 뒤로 확 열렸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나는 그 때 이 산을 통과했던 것과 같은 존재에 의해 안내되어졌습니다.

얼마동안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갔습니다.

나는 guide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에 그를 쫓을 수 있었죠.
계속 걸으면서
나는 누군가가 죽어가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점점 더 걸을수록 이 신음소리들은 많아졌고,
나는 또렷하게 ‘물!’ ‘물!’ ‘물!’ 이라고 울부짖는 외침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입구에 이르러 그 곳을 통과하자
나는 ‘물!’ ‘물!’ 이라고 외쳐되는 실제로 수백만명이나 되는 것 같은 비명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이윽고 또 다른 거대한 문이 나의 guide가 노크를 하자 열려졌고,
나는 우리가 그 산을 통과하여
지금은 내 앞에 어떤 광활한 벌판이 놓여져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이 곳에서 나의 guide는 다른 ‘읽은자’(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 오게된 영혼)들을 어떤 목적지로 데려가기 위해 날 잠시 이 널따란 벌판에 남겨 두었죠.

그 순간 처음 안내자와 다소 비슷한 존재가 내게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창 대신에 거대한 검을 가지고 있었죠.
그는 나의 미래의 운명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영혼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너는 지옥에 있게 된다.’

그가 말했다.

‘널 위한 모든 희망은 사라졌다.

너가 그 산을 통과하여 여기까지 왔을 때,
너는 잃은자들이 그들의 불타고 있는 혀를 식히기 위해 '물'을 부르짖는 신음소리와 날카로운 비명소리들을 들었다.

여기서 좀 더 가게 되면 불못(the lake of fire)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이것은 곧 너의 운명이 될 것이다.
너는 그 고통의 장소로 안내되고 나면 절대로 나올 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 들어간 자들에게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이 확 트인 벌판에 잠시 남겨지도록 허락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너는 모든 잃은자들이 영원히 고통을 당하지 않고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가 말을 마치자 난 홀로 남겨졌습니다.

난 내가 지나쳐 왔던 무서운 공포의 결과를 아는지 모르는지 난 얼이 빠진 상태가 되었죠.
지루한 무기력함이 나의 온 전신을 짖눌렸고 내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나의 다리는 나의 육체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어요.
극복하려 했지만 나는 도움이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졸음이 날 제압했고, 반쯤 깨어있고 반쯤 잠이 든채로 꿈같은 것을 보게 되었죠.

내게 있는데서 훨씬 더 위인 아주 먼 거리에서 나는 우리가 성경에서 읽은 적이 있는 아름다운 도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벽옥으로 된 그 벽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그 먼 거리에 있는 것을 향해 손을 내뻗어 휘저으면서 나는 아름다운 꽃으로 뒤덮어져 있는 광활한 평원을 봤습니다.
또 나는 생명수강과 유리바다를 보았습니다.
수많은 천사들이 그 도성의 입구를 드나들고 있었고, 찬양을 부르고 있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였습니다.
그 도성의 시민들 중에서 나는 나의 사랑스런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사악함 때문에 마음 고생하시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분이었죠.
그녀는 날 쳐다 보았고 자기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나를 밑으로 짖누르는 커다란 중력같은 것을 느꼈죠.

지금도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그 사랑스런 꽃들의 향기를 싣고 풍겨져 오는 것만 같고,
지금도 그때보다 훨씬 더 천사들의 달콤한 노랫가락이 귀에 생생히 들리는 것만 같아요.

아무튼 난 외쳤습니다.

‘아~ 나도 천국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이 축복의 잔을 들이키려 하자 갑자기 그 것은 내 입에서 내던져졌습니다.
나는 선잠에서 깨어났고 이 어두운 곳에 한 내부자가 그 행복한 꿈같은 곳으로부터 나를 되돌려 놨죠.

그는 말하기를, 지금은 내가 나의 미래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길 쫓으라고 명했고 난 발걸음을 되돌리면서 다시 그 어두운 통로로 들어가 얼마동안 그 안내자를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그 통로 옆으로 열려져 있는 어떤 문에 이르게 되었고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우리가 다른 문으로 들어가게 된 것을 깨달았는데....

아~ 어찌된 일인가!! 내 앞에는 불못(the lake of fire)이 있었습니다.

“내 눈이 볼 수 있는 한 아주 멀리까지 글자 그대로 불과 유황의 못이 있었습니다.
파도같이 거대한 불의 물결이 서로 굽이쳐 흘렀고, 커다란 화염 불길이 서로 부딪쳐 격렬한 폭풍우에 휩싸인 성난 바다의 물결처럼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습니다.
물마루를 타면서 인간들이 올라가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들은 이 섬뜩한 불못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던져졌습니다.

그들이 잠깐동안 물마루를 탔을 때에 외쳐되는 하나님에 대한 저주들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고,
'물'에 대한 그들의 애처로운 부르짖음은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거대한 불못은 읽은 영혼들의 오열과 통곡소리로 메아리 치고 메아리 쳤습니다.

곧바로 나는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있었던 그 문으로 눈길을 돌리자 이런 섬뜩한 구절이 눈에 띄였습니다.

‘이것은 너의 영원한 운명이다. 그리고 영원은 절대로 끝이 없다.‘

이내 나는 내 발밑의 대지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윽고 내가 불못에 잠기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물'에 대한 갈증이 날 사로잡았고 물을 외치면서 내 눈은 그 병원에서 뜨여졌습니다.

“나는 절대로 이런 나의 경험을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간수가 그 것을 입수해서 날 정신이 나간 놈으로 취급하여 정신병원에 가둘 것 같았기 때문이었죠.

난 이런 경험이 모두 지나가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성경이 말했던 것처럼 천국은 있습니다. 지옥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난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 병원에서 눈을 뜨자마자 내가 다시 한번 지상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그 즉시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나는 크리스챤으로서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지옥의 무시무시한 광경들은 나의 기억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내가 봤던 천국의 아름다운 것들도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 나는 나의 사랑스런 어머니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생명수 강가에 앉는 것이 허락 되어질 것이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해 있는 골짜기와 언덕이 있는 그 평원을 가로질러 천사들과 함께 돌아 다닐 것입니다.

또 구원 받은 성도들의 찬양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내가 비록 감옥에 오기 전에 육체적 쾌락을 탐닉했을 지라도 지상에서 크리스챤으로서 살다가 죽은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도 남을 것입니다.
나는 함께 범죄를 저질렀던 동료들을 버리고 형기를 마쳐 다시 자유인이 되었을 때는 좋은 사람들과 사귈 것입니다."

이 것은 여태껏 들었던 가장 놀라운 경험들 중의 하나이다.
Lennox의 이 메시지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옥으로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깨우길 바란다.
아~ 어떻게 사람들은 실제 그대로 불타고 있는 지옥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단지 48시간이 아닌 영원한 지옥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빌 위스의 23분간의 지옥 체험 간증

 

 

 


  몇 달 전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내게 지옥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가르칠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Steve Carpenter 라는 친구가 이 주제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테이프에는 Bill Wise와 그의 아내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내가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방법까지도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의 나의 가치관을 “영원히” 바꾸어버렸습니다. 나는 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 메시지의 중요성을 과장할 수 없습니다.

 

 

 

  빌은 크리스천이고, 열여섯 살에 그의 삶을 주님께 헌신했으며, 1976년에 캘리포니아로 이사해서 10년 동안 척 스미스 목사의 교회에 있었습니다. 빌과 그의 아내는 부동산업자이며 지난 10년 동안 오렌지 그린 캘리포니아의 게리그린월드 목사의 교회에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목회하는 라울이라는 목사가 몇 달 전 빌에게 와서 말하기를 “빌, 주님은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시려고 합니다. 주님은 미국의 부흥을 위해서 캔자스시티에서 부흥의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거기에 당신을 보낼 것이고 당신은 거기에 가야 합니다.” 빌은 캔자스시티에 평생 동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바로 제가 빌에게 전화를 걸어서 “캔자스시티에 와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당신의 비디오를 보았고, 당신이 캔자스시티에 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빌은 답했습니다.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가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지옥의 비전에 대해 들으실 것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예수님과의 친밀함 그리고 주님이 이 온 세계를 향해서 갖고 계신 사랑에 대해 들으실 것입니다. 빌은 지옥에 있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환상 중에 지옥을 목격했던 것과는 다릅니다. 그는 30분 동안 지옥을 경험했고, 그곳은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는 곳이었습니다. 빌과 그의 아내는 주님께 깊이 헌신된 사람들이고, 성령으로 이끄는 리더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들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빌과 그의 아내를 환영합시다.

 

 

 

 

  여기에 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모든 여정은 저희들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칼이 말했던 것과 같이 우리는 부동산업자들이고 우리는 이 강연을 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주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과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으시는 곳에 대하여 가서 전하라’고 하신 것만을 알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앞으로의 시간 동안 그것에 대한 증언을 할 것입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여러 가지 일, 즉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몇 가지 질문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제가 만약 제 자신의 간증을 듣고 있다면 이런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단지 꿈, 그러니까 안 좋은 꿈이 아닌 것인지 확신하나요?’

  여러 점을 말씀드리겠지만, 우선 저는 제 몸을 떠났었습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저는 제 몸이 복도에 뉘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유체이탈 체험인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크리스천은 몸을 떠날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맞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2절에 바울이 세 번째 하늘에 들어올려질 때 그는 "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모른다고 했으니 가능하다는 뜻이고 또한 그는 1절에 환상을 보았다고 하니 이것도 환상과 같은 유형에 속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욥기 7장 14절에는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은 분명히 주님께서 저를 환상으로 두렵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런 것에서 돌아온 것도요,

 


  저는 이 환상에서 진정되고 다시 정상인이 되기까지 일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얼마나 그 두려움으로 마음이 매우 심란했고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던지 그 체험은 저의 증인으로써의 삶에 대한 모든 관점을 바꿔 놓았고, 또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큰 것임을 알게 했습니다.

 


  제 아내가 저를 거실에서 봤던 것에 대해 여러분에게 몇 마디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은 제가 잘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부인>

  고마워요, 여보. 새벽 3시 23분쯤 제가 깨었을 때 제 옆에 빌이 없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그때 시계를 봤기 때문에 시간을 기억하죠. 전 우리 거실에서 소리치는 것을 들었어요. 저는 내려가려고 복도를 지나서 제 남편을 봤는데, 빌을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그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천성적으로 조용하구요... 전문성을 지닌 남자죠. 그는 잘 흥분하고 소란스럽거나(?) 감정적이 되는 타입이 아니죠,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는 한...?

  하여간 전 그가 실제로 충격을 받은 채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그는 아주 무기력한 자세로 우리 집 거실 복도에 있었고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저는 그가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줄로 생각했어요. 저는 곧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는 소리 지르며 "주님께 이것이 나의 생각에서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줘. 주님은 나를 지옥으로 데려가서 나의 몸은 죽는 것 같고 더 이상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전 그를 위해 계속 기도했고 잘은 모르지만 약 10분에서 20분의 시간이 지난 뒤 그는 진정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는 정말로 충격을 받은 상태였어요. 마치 베트남에 가는 사람이나, 안 좋은 경험의 회상이나 끔찍한 자동차 사고를 다시 겪는 사람 같았어요. 그것은 그냥 안 좋은 꿈을 꾸고 깨어난 사람과는 달랐어요. 네.

 

 

 

  저는 그 경험을 다 하고나서 성경에도 저처럼 지옥을 경험한 사람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성경책을 뒤지기 시작해서 찾았고 또한, 척 미슬러(chuck missler)의 말씀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는 전국에 알려진 성경공부 인도자이며, 진정한 성경학자죠.

  그분이 요나도 지옥을 경험했다고 말해줬습니다. 요나서 2장 2절에는 그가 지옥에서 소리를 질렀고 2장 6절에는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지옥을 경험한 적어도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요나죠.

  그리고 제가 꼭 알아내고 싶었던 이유는, 전에 제가 갈보리교회에서 calvary chapel 우리가 겪는 모든 영적인 경험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쓰여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경험한 것이 진짜라면 이미 성경에 쓰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서 찾기 시작했고 약 400군데나 제가 본고 듣고 느낀 것과 똑같이 묘사된 것을 발견 했습니다. 지옥과 상관된 모든 것은 이미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간증하는 것 모두가 성경에 이미 써있습니다.

  물론 400구절 모두 다는 어렵겠지만 계속 간증하면서 적어도 몇몇 성경구절은 말씀드릴게요.

  또한 저는 지옥을 부분적으로 경험한 14명의 다른 분들을 알게 됐는데 대부분 병원에서 죽음을 대면하고 있는 분들이던지 아니면 죽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등등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론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어느 주일 밤 목사님과 같이 하는 기도모임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밤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한 새벽 3시쯤 저는 옮겨졌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됐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주님이 다 설명해 주셨지만요.

 


  저는 어느 감옥 방에 떨어지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보통 생각하시는 평범한 감옥이었습니다. 벽과 문빗장은 거칠고 돌로 되어 있었고, 저는 제가 아직 어디에 있는지 몰랐었지만 제가 안 것은 단지 그곳이 엄청나게, 몹시 뜨거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극도로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감옥 안에서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제가 그 뜨거움 때문에 녹아 분해 되야 되는데 전 살아있었습니다.

  그 감옥 안에 잠깐 동안 빛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주님이 거기 계셔서 저에게 그 광경을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곧 1분쯤 지나서 다시 그 안은 어두워졌습니다. 이사야 24장 22절에는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같이 모음을 입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고 되어 있고, 잠언 7장 27절에는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여기서 방은 chamber 방입니다. room). 지옥의 한 부분은 감옥으로 되어있는 방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로 된 구덩이들이 있었고 아주 큰 불로 된 구역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감옥 방에 있었습니다.

  요나서 2장 6절에는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라고 되어있고, 욥기 17장 16절에는 흙 속에서 쉴 때에는 소망이 음부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제가 본 모든 것이 성경에 써있습니다.

  이사야 14장 19절에 나와 있는 돌들은 곧 돌 구덩이들입니다. 제가 감옥 방에 있을 때 그 네 가지 짐승도 저와 함께 감옥 안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는 그 짐승들이 귀신이었는지 몰랐습니다. 왜냐면 저는 거기에 구원받지 않은 사람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크리스천이란 것을 제 생각에서 빼내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이해는 못했지만 주님은 돌아오는 길에 저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그 짐승들은 굉장히 거대했습니다. 키가 약 3.6에서 4미터쯤 되고요, 하나는 비디오에 보실 거구요. 또 하나는 제가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희한하게도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은 저와 똑같은 귀신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한 짐승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비디오 중 하나에 정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옥의 빗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나오는 장면의 짐승일 것입니다. 케네스 해긴의 간증에 나온 것처럼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비늘 같은 것이 있었어요. 비늘이 온 몸에 있었고요 거대한 턱이 앞으로 나온 상태였으며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습니다.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짐승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면도칼 같이 날카로운 지느러미 같은 것이 온 몸에 있었고 길쭉한 팔들 그리고 비균형적인 발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구였고 구부러졌고 그리고 균형미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길쭉한 팔과 길쭉한 어깨가 각 하나씩 있었고...

정말 이상하게 생긴 그런 생물들이었어요. 끔찍하고 끔찍하게 생긴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시간 내내 하나님을 욕하고 있었어요. 전 그들이 왜 하나님을 욕하나 궁금했었습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을 그토록 증오할까?’

  그러는 중 그들의 관심이 제게로 기울여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향하여 갖은 그 증오의 감정을 저에게도 가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궁금했습니다. ‘왜 그들은 나를 증오할까? 난 그들에게 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그러나 그들은 나를 증오했습니다. 그 증오는 제가 이 세상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증오였습니다. 사람으로서 증오할 수 있는 그 능력을 초월하는 증오였습니다. 저를 절대적으로 증오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았던 것은 그들이 저를 고문하도록 임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몇 가지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알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겠습니다. 지옥에서는 모든 감각이 훨씬 더 날카롭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육체로 알고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더라구요.

  저는 거리 감각, 시간감각 등이 이 세상에서 보다 훨씬 더 날카로웠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었던 것 중에 하나가 그들은 저를 그곳에서 영원토록 고문하도록 임명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교도소 방 바닥위에 누어있었고 자비를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물들은 절대 손톱만큼도 자비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때 한 생물이 저를 붙잡고 다른 하나는 면도칼 같은 갈고리 발톱으로 저의 살을 찢었습니다. 막 찢는데 인정사정없이 하나님께서 아주 훌륭하게 만드신 몸을 대했습니다.

그것은 나를 향한 강렬한 증오였습니다. 저는 왜 제가 살아있는지 의아했고 왜 내가 이런 것을 통해 계속 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내가 죽지 않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이 찢어진 조각처럼 걸려있었습니다. 물도 피도 없었으며 단지 살만 걸려있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지옥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옥에는 물도 없습니다. 이사야 14장 9-10을 보면 "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시편 88:4는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힘이 있는 것을 잘 압니다. 성경에도 보면 어느 귀신이 광야로 나간 것을 보게 됩니다.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켜도 그는 그 맨 것을 끓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귀신의 힘에 잡힌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이 사람들보다 약 천배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제 본래 힘이 있었어도 그들로부터 떨어질 수가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그들의 인자로 살고 있었는데 하지만 물론 그들에겐 인자함이라곤 전혀 없지요.

 


  그 귀신들의 냄새와 지옥의 냄새는 지독했습니다. 여러분께 설명하기조차 힘들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냄새는 마치 유황에 불타는 몸 냄새와 그리고 귀신들의 냄새는 꼭 시큼하고 썩어 악취가 나는 고기 아니면 상한 계란과 우유 그런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천 번 곱해서 그것을 코에다 갖다대고 숨을 들여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너무 독해서 만일 세상에 있는 몸으로 갔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또다시 궁금했습니다. ‘왜 난 이런 악취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을까?’ 정말로 끔찍스러웠지만 여전히 죽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말입니다. 에스겔서 22:26에 보면 이것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더럽힘이라는 뜻은 천한 말로 강등된다는 것이고 신성모독입니다. 그들이 저를 고문하는 것이 신명기 32장 22-24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네 그 짐승들의 이빨이 당신 앞에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22:6에는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라고 말하며 미가 3:2을 보면 참 신기한 구절이 있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증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짓입니다. 아주 비인간적인 짓인데 그럼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바로 지옥에서 오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하는 짓입니다.

  네... 그리고 인자함. 인자는 오직 천국에만 있습니다. 인자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자함에 대해서는 그 어떤 종류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는 절대적으로 인자를 싫어합니다.

  시편 36:5를 보면,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라고 쓰여 있습니다. 절대 천국에 있지 지옥에 있지 않습니다. 시편 74:20에는 "대저 땅 흑암한 곳에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 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강포하고, 비참하고, 무서운 곳을 견뎌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을 견디어야 합니다. 또 다른 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최고품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창조의 최고 높은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들은 최저품의 창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으로써 삶의 전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배우고 우리 자신을 고쳐나가고 그러잖아요. 근데 지옥에 가면 당신의 삶이 귀신으로부터 이끌리게 됩니다. 귀신은 IQ가 빵점이에요. 완전히 무지한 창조물이에요. 그들이 아는 것이란 하나님에 대한 증오, 사람에 대한 증오 그리고 고문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것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당신의 삶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성경에 이에 대한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이 견뎌내야 할 그 치욕감. '아니, 그것들이 내 삶을 주도할 것인데, 난 그것을 전혀 막을 수 없다고?' 이사야서 5:14를 보면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라고 말하며 이사야서 57:9를 보면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욱 더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을 원방에 보내고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에스겔 32:24도 구덩이에서 견뎌야 할 수치스러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면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살륙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 그들이 생존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었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그런 말들이 성경에 쭉 있습니다. 어쨌든 정말 그것들로부터 삶이 주도되는 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었어요. 그들은 당신을 위한 인자함이라곤 절대 없습니다.

 

 

 

  저는 감방 안에 누워있었고 아주 캄캄해졌습니다. 아주 새깜 했습니다. 그 어두움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두움이었습니다. 저도 동굴 같은데 가보고 했고, 아리조나 주에 있는 유전에도 가보았는데 이 어두움은 상상할 수 없는 어두움입니다. 근데 어떻게 해서 제가 기어갈 수 있었어요. 그들이 저를 그럴 수 있게 놔두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문이 어느 쪽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요. 그래서 그쪽으로 기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방에서 나왔다는 것을 느꼈고 저는 한쪽으로 보았는데 전부 까맸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들렸던 것은 전부 비명소리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 수십억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저는 그들이 수 십억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너무 시끄러웠어요. 어떤 사람이 소리 지르는 것을 들어보셨다면 그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골치아픈건지 아실 거예요. 근데 수십억의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있는 걸 듣는데, 이런 것이 당신의 정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상상하실 수 있을거예요. 참지 못할 지경이고 귀를 막고 싶어도 너무 커서 꿰뚫을 거예요. 그 비명소리를 피할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을 사로잡는 그 두려움은 정말 믿지 못할 지경입니다. 두려움이 지배하는 곳이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입니다.

  이렇게 두려움도 견디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문과 그 어두움, 정말 아무것도 안 보여요. 무엇이 당신 앞으로 다가오는지조차 못 봅니다. 성경이 어두움에 대해서 시편 88:6에 나와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데 두셨사오며" 요한계시록 16:10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영어원문: full of darkness) 유다서 13:13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라고 나와 있죠. 그곳의 어두움은 느낄 수 있답니다. 출애굽기 10:21을 보면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만한 흑암이리라"라고 나옵니다. 그 어두움은 더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요, 제가 말씀드리지만, 정말 힘이 대단했어요. 당신을 지배합니다. 그것은 마치, 혹시 어떤 무서운 영화를 보셨을 때 무서움이 목구멍 속에서 올라오면서 '윽!'하는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을 적어도 1000번을 곱하고 있다고 해보세요. 그렇게 영원히 지내야 합니다. 전 무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서핑을 즐겼습니다. 지금도 가끔 즐기지만 제가 정말 어렸을 때 플로리다에서 서핑을 하고 있었는데 상어 떼가 몰려오는 거예요. 한 275센치나 되는 뱀암상어가 오더니 내 오른편을 물더니 저의 다리를 잡고 아래로 끌어 당기는 거예요. 제 다리가 그 거대한 상어 입속에 있었어요. 그때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는데, 제가 구원 받기 이전이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상어가 저를 놔두고 가더라구요. 전 하나님께서 그 상어의 입을 열도록 하신 줄로 믿어요. 근데 그 잠깐 동안 나에게 밀려온 두려움은 정말 압도적이었어요. 상어에 대한 영화 보신 분들 있으신지 모르겠어요. 그 옛날 영화들 기억하시나요? 그런 것들은 정말 실제로 겪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요. 그 두려움은 정말 대단했어요. 제 옆에 몇 피트 떨어져 있는 친구가 있었었는데 그 상어가 그 친구의 다리를 물어 뜯었어요 그리고 해변으로 끌어내렸는데 막 피가 온 곳에 있고 비명소리가 여기저기 들리고 다리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알아요. 알겠는데 그 제가 아는 두려움은 지옥에서 느낀 두려움과 비교할 때 정말로 절대로 아무것도 아니에요. 비교할만한 것이 없어요. 저는 그때 상어 그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러한 것들이 지옥에서 견뎌야 할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이사야 24장 17,18은 "땅의 거민아... 두려운 소리를 인하여..." 소리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에 있는 어떤 감옥을 방문한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룻밤을 거기서 묵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고 말을 했답니다. 모두가 라운지에서 막 소리 지르고 있었데요. 사람들이 밤 내내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하는 것에 너무 놀랐다고 말했어요.

  심지어 이 세상의 감옥에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데 지옥은 오죽하겠어요? 욥기 18:14는 "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 무서움의 왕에게로 잡혀가고"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테러의 왕입니다.(무서움=terror=테러)

 

 

 

  제가 감방 밖으로 나와서 이쪽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저쪽 방향으로 보니까 조금 뭔가 보였어요. 작은 불꽃 약 1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전 그 간격이 10마일인지 알았어요. 불꽃의 약 3마일정도 건너편에 불구덩이가 있었어요. 지옥의 전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약간 저쪽으로 불꽃이 하늘배경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어두움이 너무 무거워서 모든 빛을 삼킵니다. 근데 하늘배경의 아주 조금을 볼 수 있을만큼 빛이 있어 보였는데 모든 것이 밤색이었고, 황폐했답니다. 정말 초록색의 잎사귀 단 한개도 없었고 그 어떤 생명이라곤 전혀 볼 수가 없었어요. 돌만 있고 쓰레기와 컴컴한 하늘. 그리고 하늘엔 스모그.

  성경에 이런 구절이 신명기 29:23에 있는데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라고 말합니다. 지옥에는 생명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정말 굉장히 이상했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그런 것들, 나무들, 맑은 공기 뭐 그런 것들 그런 생명이 전혀 없었어요. 하나도 없어요. 그곳은 완전히 모든 게 죽어있고 죽음이었어요.

 


  그리고 열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열이 너무 강해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신명기 32:22절을 보면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 도다"라고 말합니다. 유다서 7절 보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라고 나오고 시편 11:6을 보면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나옵니다.

  이런 것들이 지옥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곳은 너무나도 뜨거운 곳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원래 당신을 벌써 죽여야 할텐데 그로 인해 죽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조금의 술을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비명소리와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요, 나오고 싶었어요. 마치 아주 지치고 시끄러운 하루가 지나면 밤에 집에 가고 싶은 것처럼요. 그냥 평안한 마음을 갖고 싶죠. 근데 그곳에서는 그 모든 비명소리와 고문을 다 견뎌야 해요. 그리고 결코, 절대 그로부터 떠날 수 없어요. 절대!!!

  이사야서 57:21을 보면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옥에서는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또 하나 견뎌야 할 부끄러움이죠. 성경에 보면 수치에 관해서 나와 있습니다.에스겔 32:24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욥기 26:6 "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이 말은 하나님은 지옥을 보실 수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 보이는 곳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그곳에서 벌거벗게 되어 있구요. 이것 역시 극복해야 하는 거죠

  

  지옥에는 물이 전혀 없습니다. 공중에 습기도 없습니다. 그 어떤 종류의 물기도 없어요. 너무 마른 곳입니다. 당신은 물 한 방울이 절박합니다. 한 방울만.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요. 누가복음 16:24를 보면 부자가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답하는 것이 나오죠. 몇 가지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 부자가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단 한 물방울을 원하는 것이에요. 그 물 한 방울 만이라도 그토록 귀했을 거예요. 딱 한 방울. 그러나 절대 한 방울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입속이 마른 것을 상상하려면 매우 힘들텐데요. 골짜기 같은 곳에 마라톤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입속에 솜털 같은 것이 있고 그렇게 며칠동안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렇게 계속 지내야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메마름. 오직 물 한 방울 위한 절박함.

  성경이 계시해주는 또 다른 점은, 우리는 낙원과 하데스(지옥) 사이에 큰 틈이 있다는 것을 알잖아요. 그리고 부자가 아브라함을 그렇게 먼데서 볼 수 있었어요. 근데 자연법칙에 따르면 어떻게 그가 나사로와 아브라함을 알아봤을까요? 첫째로, 그는 아브라함을 만나본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먼 거리에서 사람을 보면 누군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그냥 알게 되어있습니다. 지옥에서는 알게 되요.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저도 깊이과 거리감 그런 것들요.

 


  귀신 중 하나가 저를 잡고 감방으로 다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고문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어요. 정말로 이 부분은 말씀드리기가 싫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그 고문을 다시 재연하고 싶지 않아요. 그들은 내 두개골을 눌러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한 귀신은 저를 잡고 제 머리를 찌부러뜨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는 막 소리 지르고 있었고 자비를 빌어대고 있었어요. 근데 절대 자비는 없었어요. 그 즈음 그들은 각각 내 팔과 다리를 붙잡고 찢어버리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무엇이 저를 갑자기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그 감방에서 끌어냈습니다. 주님이셨는 것을 지금은 아는데 그 당시에는 몰랐어요. 저는 그곳에 구원받지 않은 사람으로 갔어요. 그래서 잘 몰랐는데, 저는 그 곳을 마치 제가 주님을 한번도 영접하지 못한 사람으로 갔어요. 그 다음 제가 전에 보았던 그 불꽃 옆에 앉히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구덩이 옆에 있었고 거대한 동굴 바로 아래 있었어요.

 

 

 

  저는 그 불꽃을 통해 간신히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였고 사람들의 몸뚱이들이 불속에서 소리 지르는 모습, 자비를 구하는 비명소리들. 그곳에서 불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을 절대 가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겪었던 고문도 이미 너무나 컸기 때문이죠. 근데 그 열과 불은 더 최악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갈 수 있게 빌고 있었습니다. 근데 온 각처마다 그 큰 생물체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기어서 나가려고 하는 것을 그들이 잡아서 다시 불 있는 곳으로 끌어왔습니다. 그리고 나가지 못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곳은 정말 정말 끔찍한 곳이다. 너무나 소름끼치고 무섭다.' 모든 것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어요. 목마르고, 배가 고프고, 피곤해 지쳐있고, 잠도 못자고.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처럼 잠이 필요한데 잘 수 없어요. 우리 몸은 잠이 필요합니다. 요한계시록 14:11은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라고 말합니다. 그곳에서는 당신은 결단코 잠을 얻지 못합니다. 잠이 평생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나요?

  그리고 물. 스가랴 9:11보면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지옥에는 절대 물이 없는 곳입니다.

저는 지옥의 위치가 지구 중앙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이 지옥이 있는 곳입니다. 지구 중심에요. 저는 약 3700마일 지구 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가 알듯이 지구의 직경은 약 8000마일 정도 됩니다. 반이 약 4000마일. 저는 약 3700마일 아래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4장 9절은 예수님이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민수기 17:32를 보면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라고 나와 있어요. 지옥이 지금 있는 곳은 그곳입니다. 나중에 지옥과 죽음이 불 못에 던져질 것이지요. 그리고 어둠 밖으로 쫓겨낸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심판 날 이후 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근데 지금은 지구 중앙에 있습니다.

  저는 그 불구덩이 옆 가에 있었는데 그 온 귀신들이 벽에 줄을 서 있었습니다. 모든 크기과 모양대로요. 각종 상상할 수 있는 불구하고 못생긴 생물체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구부러졌고 불구한 생물체입니다. 거대한 것들, 작은 것들, 거미들, 큰 거미들, 이렇게 큰 것들, 쥐, 뱀, 지렁이들. 성경도 지렁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14:11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온갖 꺼림칙하고 혐오한 종류의 생물체들이었습니다. 온 곳에. 그리고 그들은 사슬에 묶여있는 듯 하였습니다. 벽에 묶여있었어요. 저는 왜 이것들이 벽에 묶여있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근데 성경 유다서 6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어쩜 제가 그것을 본 것일 수도 있어요, 잘은 모르나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이 나를 잡지 못해서 너무 다행이었어요. 그들은 저를 아주 열정을 갖고 증오했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또 하나가 그들은 단지 생물체들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벽에 묶여있었던 것이 너무 다행이었어요.

 


  나는 불꽃을 떠나 이 구덩이와 터널을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곧 어두워 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벽에 거하고 있는 악마들을 볼 수 있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에 나는 ‘누가 이 생물들을 막을 수 있을까? 아무도 이 것들과 싸울수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공포는 너무나 강해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것과 고통과 다른 모든 것 중에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이 위에 지상에는 삶이 계속 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 밑에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하에 이 실존하는 세계에 대해 모르고 있으며 여기에는 수억에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한 번이라도 나갈 기회를 위해 간청하고 있지만 그러한 기회는 절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드리지 않은 것에 대해 자기 자신들에게 화가 나 있습니다. 지옥에서 가장 심한 고통은 여기에서 나갈 희망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이해했습니다. 이제 영원이라는 것에 대해 알 것 같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희망이 없이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제 아내에 대해, 그리고 아내에게 절대 갈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만약 지진이나 어떠한 다른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갈수가 없으며 다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것이며 다시는 그녀와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녀와 함께 하거나 대화하지 못하고 그녀가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끔찍하게 괴롭혔습니다. 여기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여기서 당신은 절대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지상에는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조차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거나, 최소한 죽어서도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희망이 없는 상황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38장 18절에는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라고 하였습니다. 희망은 없으며 진실은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터널위로 올라갈 때, 나는 완전한 공포에 사로잡혔으며 절망적이었으며 이 악마들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 찬양 드립니다! 밝은 빛은 이 곳을 비추었고 나는 주님의 윤곽, 즉 한 남자에 윤곽을 보았으며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밝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방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절망적이었지만 지금은 저는 이곳에서 빠져나왔으며 저는 주님을 알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과 또 나는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들어오면) 여기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여기에 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길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6절은 주님에 요한이 천국에 갔을 때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의 기록에는 태양은 주님의 힘에 빛났으며 그가 주님을 보았을 때 주님의 발밑에 죽은 자같이 쓰러졌습니다.

 


  아마 주님께 백만 가지의 질문을 묻고 싶으시겠지만 당신이 거기에 있으면 당신이 오직 할 수 있는건 주님을 경배하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우리를 이로부터 구원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을 할 수 있을만큼 안정을 찾았을 때, 저는 주님께 말했습니다(저는 진짜로 말한 것 같지는 않고 생각을 했지만 주님께서는 대답해 주셨습니다).      ‘왜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까?’ 주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은 또한 “내 자녀들 중에도 이 장소가 실재라는 것을 믿지 않는 자녀가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충격을 먹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은 지옥을 믿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사실 그대로 불타는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주님, 왜 저를 택하였습니까?” 주님은 대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왜 주님께서 나를 택하여 이곳에 보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이곳에 제일 가지 못할 사람입니다. 나와 내 아내는 악하고 나쁜 영화를 싫어하며 이곳보다 뜨겁지 않은 여름도 싫어합니다. 그곳(지옥)은 더럽고 질서가 없고 모두 혼란이며 역겹지만 나는 질서적이며 훌륭한 걸 사랑합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주님은 알려주시질 않았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시길 “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이장소를 싫어하는지 말해라. 나는 나의 창조물이 한명도 이곳에 가길 원치 않는다. 나는 이곳을 사람을 위해서 만들지 않았다. 이곳은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만들어 졌다. 너는 사람들에게 말해야만 한다. 나는 너에게 그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입을 주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그들은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가 미쳤거나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너의 일은 그들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님에 일이다.”

 


  “너는 가서 그들에게 말해라.” 저는 마음속으로 네, 주님, 저는 가서 말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고 두려워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오로지 가서 말해야 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주님, 왜 이러한 생물들이 저를 이처럼 지독히 싫어합니까?” 주님은 그것은 내가 주님에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나를 싫어한다. 악마는 하나님을 대항해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단다. 악마는 하나님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다. 그러나 악마는 하나님에 창조물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왜 악마가 인류를 싫어하며 속이고 지옥에 데려가며 병들게 하며 하나님에 창조물을 해를 입히는 것은 어떤 것이던지 하는 이유이다.”

 


  이때, 주님은 저를 주님에 생각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저는 생각으로 채워졌습니다. 주님은 저를 주님에 심장에 한 부분을 만지게 하셔서 주님이 얼마나 인류를 사랑하시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 몸이 감당하기에는 인류에 대한 주님에 사랑은 너무나 압도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부인과 자녀들을 사랑하지만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 대한 주님에 사랑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주님에 사랑은 우리들에 사랑과 능력보다 무한하게 더 큽니다. 에베소서 3장 19장에 나와 있는 것 같이 주님에 사랑은 지식을 넘습니다. 그것은 지식을 완전히 넘어서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주님이 인류를 사랑하셔서 한 명을 위하여, 이곳에 오게 하지 않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주님에 창조물이 이곳에 오는 것을 보시기에는 너무 아파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을 아프게 합니다. 주님은 한 사람이 가는 것에 눈물 흘리십니다. 저는 주님께 애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주님 심장에 한 부분을 만지게 하셨고 주님은 주님의 창조물이 이곳에 오는데 너무나 큰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나는 마지막 숨을 다하여서 주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세상에 증거해야겠다 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모릅니다. 그들은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식을 이러한 부분에 무지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주님은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그리고 얼마나 이곳 (지옥)을 싫어하시는지 나누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매우 매우 속히 온다는 것을 전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또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내가 매우 매우 속히 온다는 것을 전해줘라. "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네? 주님? 매우 속히라뇨? 어떻게 매우 속히요 주님?" 이렇게 물어볼 걸... 지금은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 그 때는 질문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질문을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주님을 경배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요. 믿기 힘들 정도로 주님의 평화가 내 위에 임하고 내 옆에 계시는 것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이 수많은 기름 부음이 강한 그런 예배를 드렸었는데 그러나 바로 옆에 계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비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근데 그때 제가 눈을 들어 그 벽에 있는 그 흉포한 귀신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마치 개미 같아 보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컸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옆에 있을 때는 그 모든 것들이 꼭 개미 같았어요. 개미요. 너무 흥분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쟤네들 좀 보세요! 하! 개미네요!". 주님은 답변하셨습니다, "넌 그들을 단지 내 이름으로 묶어서 쫓아내면 된단다". 그러면서 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 주님이 교회에게 주신 그 힘은~!" 주님 없이 그들을 봤을 때는 정말 흉포하고 무섭고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괴물들이었는데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그 생물체들을 보면서 갑자기 담대해졌어요. 그리고 그 생물체들을 보고 이랬습니다. "니들! 나를 한 때 막 괴롭히고 고문했지 그리고 날 해부하려고 했지! 이리와! 어서! 덤벼!" 무슨 생각을 했는 진 몰라도 어쨌든 "이리 왓!" 막 그러면서 "자, 예수님! 쟤네들 잡아요!" 그랬답니다.

우린 그다음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계속 올라갔어야 했어요. 아직도 터널 속에 있었구요. 잘 보이진 않았지만 마치 아주 거대한 world wind(바람?) 같았습니다. 그리고 우린 계속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나오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막 올라가다가 꼭대기 까지 올라갔거든요. 그리고 지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환상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그것을 허락하신 줄로 믿어요. 주님은 그 터널에서 어떤 방향이던지 간에 빠져나오실 수 있으셨을 거예요. 근데 주님께서 제가 어렸을 때 지구가 우주에서 보았을 때 어떤 모양인지 보고 싶어 했던 것을 아셨던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지구를 우주에서 보고 싶었어요. 근데 거기서 지구가 아무것도 아닌 공간 위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이 말한 것처럼, 욥기 26장 7절에 보면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고 나옵니다. (원어: hangeth the earth upon nothing)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지구를 저렇게 붙잡고 있을까? 무엇이 저것을 저렇게 완벽하게 만들까? 하나님께서 그만큼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놀라게 한 그 하나님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힘이 많으신지! 모든 것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통제 안에 있습니다. 사람의 머리카락도 하나님이 모르시고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모르게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저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힘이 많으십니다. 아주 압도적이었어요. 이사야서 40:22에 보면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라고 나와 있습니다.(원어 circle) 그러면서 또 생각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콜럼버스는 성경도 못 읽었나, 읽었다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을텐데... 사람들은 그때 지구가 평판인줄 알았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다시 돌아올 때 어떤 열기가 있는 방패를 통하였습니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그런 방패였습니다. 그 방패를 통하면서도 저는 하나님의 통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편 47편 9절에 "세상의 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정말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저는 주님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임재와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캘리포니아로 매우 빠른 속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놀랄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저희 집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집 지붕을 통하여 집 안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마루에 누워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놀라운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저는 바닥에 누워있는 저 자신을 보고 "저건 내가 아니다. 어떻게 저게 나지? 난 여기 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해 되십니까? 어떤 누구도 두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근데 지금 제가 저기 누워있었는데 그는 정말 제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성경에 말하죠. 우리는 육신의 장막에 살고 있다고요. 이것은 제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기 누운 저 몸은 단지 텐트에 불과합니다.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이죠. 일시적인 거예요. 지금 여기 내가 진짜 나 입니다. 영원이 기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걱정하며 사는 인생. 이건 야고보서 4:14를 보면 안개에 대해 나오죠.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요. 인생은 짧아요. 길면 100년입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예요. 안개처럼 사라지는 거예요. 전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것이 영원토록 유효한 것이죠. 우리는 전도해야 하고 우리는 나가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작은 걱정거리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면요 이 기간은 순식간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는 제 몸이 거기 누워있는 것을 보고 정말, 마치 여러분이 자동차에서 내려 그 자동차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자동차입니다. 당신을 단지 둘러싼 것입니다. 딱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제 몸은 나를 둘러쌌을 뿐이지 진짜 저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주님 절 떠나지 마세요 제발 떠나지 마세요 주님과 조금 만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근데 주님은 저를 떠나시고 저는 다시 제 몸으로 돌아왔거든요. 근데 무엇이 저를 다시 몸으로 당기었는데 마치 내 입과 코 속으로 빨려 드려가는 것 같이요. 그리고 주님이 저를 떠나실 때, 모든 두려움과 고문이 다시 제 생각에 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도,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낸다라고 쓰여있거든요. 근데 저는 계속 그 완전한 사랑 옆에 있었는데 그 사랑이 저를 떠났습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지옥에서 있었던 그 모든 두려움과 공포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저는 극치에 몸부림을 쳤고 저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고 제 몸이 그런 두려움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압박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은 그렇게 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는 되더라구요. 이것을 내 생각에서 거둬주세요. 보통 같았다면 이런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상담 같은 것을 통했어야 했을 텐데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그것들을 다 거두어가셨습니다. 기억은 남겨주셨는데 정신적 충격(trauma)과 두려움은 제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많은 것들을 겪고 난 뒤 저는 성경이 이것을 확인시켜주기를 바랬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을 모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질문하셔야 합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믿어야 할까? 그들이 본 것이 진짜일까? 그들 그리고 제가 말한 것이요. 근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믿어야 할까 질문하셔야 합니다. 당신은 이 기회를 갖고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아니야 난 그걸 믿지 않아. 난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이런 생각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저버리고 당신의 영원을 가셔야 합니다. 이러신다면 저는 이것이 매우 어리석게 보입니다. 당신은 마귀가 당신을 속이도록 놔두시면 안 됩니다. 그 웃고 있던 생물체 있죠? 마귀가 그렇게 웃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옥에 가게 되면요. 마귀는 웃을 것입니다. 왜냐면 당신에게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근데 당신은 그걸 놓친 것이죠. 근데 한 번 지옥을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절대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난 그래도 착한 사람이야. 난 그런 곳에 갈만하지 않아, 그 정도는 아니야. 네, 당신은 어쩜 착하고 좋은 사람일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착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비교할 것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기준에 비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의 기준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만일 당신이 이 세상에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그로 인해 당신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면서 물건 하나를 훔쳤어도, 종이찝개라던가, 당신 사장님의 시간이라던가, 그 어떤 것이라도 단 한 번 훔쳐도 그것으로 당신은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당신에게 잘못한 그 누구를 용서하지 못했거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었거나, 이 모든 것 중에 하나라도 단 한 번 했다면 그것으로 인해 당신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천국을 가지 못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모두 못 미칩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위로 할 수가 없습니다.

디도서 3:5에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비교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마치 어떤 여자가 초록색 풀장에 있는 흰 양떼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녀는 양떼를 보고 그 하얀 것이 보기에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밤이 지나고 눈이 내렸습니다. 다음 아침 양떼를 보는 그녀는 그 양들이 모두 우중충하고 어둑어둑했습니다. 흰눈에 비해서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 우리를 비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의 기준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겐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안 되기 때문이죠.

 


  주님은 요한복음 13:16에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분이 지옥에서 건져내실 유일한 길입니다. 이곳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모르거나 예수님을 진심으로 내 삶의 구주로 받아드리지 않으셨다면, 한 번도 삶 가운데 입술로 주님이 나의 구세주인 것임을 고백한 적이 없으셨다면,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일어나 주시겠어요? 예수님을 위해서요. 마귀가 당신을 보고 웃도록 허락지 마세요. 지금 일어나세요. 기회가 아직 있을 때요. 얼마 동안의 시간이 더 있을지 모릅니다. 내일 내가 죽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게 될지 모르는 것이죠. 제가 다시 말씀드리고 싶지만, 정말 그 곳은, 그 열기 하나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2001년 쌍둥이 타워에서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서로 손잡고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셨죠? 얼마나 끔찍 했었을까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열기를 견뎌야 했어요. 약 5초만 더 있었어도 그들을 불태웠을 거예요. 그곳은 약 2000 C였어요. 과학자들은 지구 중심은 약 12000C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그런 곳을 영원히 견뎌야 합니다. 당신의 의지로 인해서요. 참 바보스럽지 않은지요?

 

 

 

(간증 부분은 여기서 끝나고 그 다음 맨 첫 부분에 말씀하셨던 목사님이 나오셔서 마무리 하십니다)

 


  이 목사님이 결신기도를 시키시는 데요 이것도 적어볼께요.

 


  저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 도전장을 드립니다. 결신선언을 하기를 원하는데, 여러분, 여러분이 이 선언을 하실 때는, 정말로 성령님의 운동력이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기를 바라시는 분들만 하시고 진짜 자신이 원해서 하고 싶은 분들만 따라하시길 바랍니다.

  첫째, 나는 다시는 사람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확실히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의 얼굴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둘째, 나는 내 남은 인생 동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과 천국 그리고 지옥에 대해 말을 할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서약입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한 모든 분들이 이 두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신이 사람들의 영혼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영광스럽고 기쁜 소식을 나누지 않는다면 뭣하러 사람들과 교제를 하며 관계를 갖습니까?

  사람을 알고 사람들과 친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교류하며 그들과 함께 기뻐하면서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예수님 없이는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중죄를 범하는 일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진리를 증거할 수 있는 귀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결심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신다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결심을 하시는 분들은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 나는 예수님이 당신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 귀한 성령님을 믿습니다.

 - 저는 이 시간 기회를 받았습니다.

 - 저는 저에게 선언합니다.

 - 이것은 나의 고백입니다.

 - 나는 더 이상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사람들의 견해로 인해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 나의 명성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 나는 사람의 두려움을 증오합니다.

 -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 내 남은 인생동안

 - 주 예수님, 당신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 천국에 대해서

 - 그리고 지옥이라는 곳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 저는 선을 넘어설 것입니다.

 - 저는 다시는 무관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 정신이 팔려, 관심을 갖지 않고

 - 주님의 말씀을 받아드리고

 - 저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리고 저는 자신 있게 말할 것입니다.

 - 이것은 하나님께 향한 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이 온 도시와 나라와 세상 위에 당신의 군대를 일으키소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옳게 분별하는 백성들,

영원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백성들이 천국의 영광 속과 지옥의 공포를 맑은 영으로 볼 수 있게 하시고 그리고 그들의 모든 우선순위를 주님께 순종하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은혜만이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넘칠 수 있도록, 은혜, 은혜, 은혜가 당신의 백성 위에 임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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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사람 2011. 7. 11. 22:44

성경을 바르게 읽어 바르게 해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이란 아무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교회에서 혹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저도 배운 대로 가르치다가
성경을 더 여러 차례 읽고 가르치면서 한 가지씩 두 가지씩 내가 잘 못 배웠고
잘 못 가르쳐 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성도들 앞에서 내가 잘 못 배웠고 잘 못 가르쳐 왔다고 고백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고백하지 않고 계속하여 잘 못 가르친다는 것은 실로 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교회 앞에서 고백을 하고
남은 생애 최선을 다하여 바르게 전하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이 바른지 아닌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문제이기는 합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는 틀림없다고 믿고 전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과 그 외 온 세계 모든 목사님들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제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잘 못 배운 것은 다른 사람도 잘 못 배울 수 있고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유행처럼 자행되고 있는 몇 가지만 열거 해 보겠습니다.

1.송구영신 예배 때에 카드를 뽑고 헌금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거기에 적인 구절이 그 사람에게 그 해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일천번제라는 것은 온 세계 모든 목사님들이 다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잘 못 된 것입니다.

3.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연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는
  기대는 잘 못된 것이 확실합니다. 한국 교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하지만
  이 역사의 연장선에서 지금 이후에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4.신약 시대에는 아무 것이나 다 먹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잘 못된 것이 확실합니다.
  몸에 해로운 것이면 지금도 더 해롭고 앞으로는 더 해로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과거에는 오염도 덜 되었고 또 육체적으로 많은 노동을 해서 덜 해로운 수 있었지만
  오늘 날에는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5.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서 이겼기 때문에 에서에게 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천사와 씨름하기 전에 라반에게 해를 당하지 않았던 것은 천사를 만나 씨름하기 전이었습니다.

6.하나님의 말씀이 짝이 있다고 해석하는 이사야서 34장 16절 해석은 잘 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에서 족속이 멸망한 후에 에돔 땅이 황폐하여 거기 모여든 동물들이 짝(암컷=래우타흐)을
  데리고 와서 노는 곳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7.기드온의 300 용사 운동이란 잘 못된 것입니다.
  그냥 개처럼 물을 핥은 300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8.별미를 바쳐야 축복받는다고 가르치면서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창세기를 잘 읽어 보시면 전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일반 성도들도 다 알 수 있습니다.

9.대환난 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대부분의 목사들이
  거의 다 똑 같이 가르치고 있지만 틀린 것입니다.

10.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니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하는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액자를 만들어 걸어 두는 것은 잘 못된 것이 확실합니다.

11.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이 아가페 사랑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12.십일조하면 복 받는다는 것이 말라기라는 책의 주제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성경을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13.예레미야서 중에서 33장 3절 한절만 요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잘 못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교회 성도 대부분의 저지르고 있는 과오입니다.

14.가인의 제사에 피가 없어서 받지 않으셨다고 가르치는 것도 잘 못된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왜 피가 없는 제물을 가져왔느냐!” 하고 책망한 것이 아닙니다.

15.노아가 방주를 짓는 데 120년 걸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해석은 잘 못된 것입니다.
    이는 조금만 계산만 해 보아도 잘 못된 것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16.아브라함의 고향을 갈대아 우르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아브람이 태어난 곳은 하란이었기 때문입니다.

17.예수님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갔다고 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아직은 그 몸이 무덤 속에 있고 그 영혼은 아브라함의 품 혹은 낙원에 있다가 주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하거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후에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18.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지옥에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것도 꼭 같이 잘 못되었습니다.
    성도들이 부활하여 천년 왕국을 누린 후에 불신자들이 심판의 부활로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 후에야
    불과 유황으로 타는 곳 즉 지옥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19.그 외 제가 성경강좌 때에 지적하였던 것들은 지금 세상에 있는 많은 목사들이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고 거기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확신을 합니다.

20. 에스겔서와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생물을 4 복음서라고 다들 해석하지만
     이는 매우 잘 못된 해석입니다.

21.요엘서 1장 4절에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을 제롬과 같은 학자들과 대부분의 학자들이
     바벨론 앗수르 헬라 로마라고 해석한 것은 치명적으로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22. 요엘서 2장 4절~11절에 나오는 군대는 전도자가 아니라 메뚜기나 해충들인데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이를 전도하는 예수님의 추수꾼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3.요엘서 2장 23절에 말하는 이른 비를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해석하고
     늦을 비를 주님의 재림직적 즉 말세에 강림하는 성령의 강림으로 해석하는 늦은비 신학은
     오늘날 오순절교단에서 주장하지만 이는 현저하게 잘 못된 해석입니다.

24.잘 된다 복준다 하는 구절만 보면 자기 보고 한 말이고 저주의 경고가 있는 구절에 대하여
    눈을 감고 넘어 가는 자세는 잘 못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그렇게 해 왔고 지금도 그렇게들 하고 있는데 이는 크게 잘 못된 것입니다.

25. 미가서와 스바냐서 같은 예언자들의 말씀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말씀들인데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평생을 단 한번도 설교하지 않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26. 요한 계시록은 인류의 역사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들이 겪을 대 환난과 인내와
     시험을 계시한 책이라 매우 중요한데도 이를 봉해 두고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과오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7. 대 환난 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교회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치명적으로 잘못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28. 요한 계시록 4장 1절에 이리로 올라 오라 하는 말씀을 휴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저하게
     잘못 배운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미국과 한국의 침례교도들과 오순절 계통의 목사들이
     공통적으로 범하고 있는 실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9.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성경에 부합되지 않는 해석들이며
     요한계시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주장한 이론에 불과합니다.

30. 마태복음 24장에 무화과 나무의 싹이 연하여지고 라는 말씀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무리한 해석들입니다.

31. 사도 도마를 의심 많은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잘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 도마는 결코 의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 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믿으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의심 했던 주님의 부활은 다른 사람들도 다 의심했던 것이고 도마가 의심했던 것은
     주님의 부활 이외 어떤 경우에도 의심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32.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축복(祝福)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 못하는 것입니다.
      손 윗 사람이 누구를 위하여 복을 빌어 주는 것이 축복(祝福)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빌고 기도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는 많은 목회자들이 다 하고 있지만 틀림없이 잘 못된 것입니다.

33. 성경을 통전적으로, 즉 전체를 바르게 보지 못하신 분들은 부분도 바르게 해석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으로써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성경해석원리였습니다. 전체를 바르게 알아야 부분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34.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홀로 주관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 보시면 단 한 곳도 그렇게 가르치는 부분은 없다.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는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었습니다.
    
만약 역사를 하나님께서 홀로 주관하셨는데 그 역사가 잘 못되었다면
그 책임을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에게, 즉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수가 없고
인간이 오히려 하나님을 탄핵하거나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를
홀로 주관하실 것이라고 철통같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주관(主管)이란 말이 38 회 정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악령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여기서 세상 주관자(코스모크라토르)는
악한 마귀와 귀신들과 그 귀신들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며
사람들을 주관하는 정치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엡 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단지 베드로 후서에 한 번 나오는 [주관하는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이 때 사용된 용어는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가 아니라
최후의 심판을 주관하는 이(퀴리오테스=주님)이다. (벧후 2: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퀴리오테스=주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따라서
우리는 세상이 잘 못되어 갈 때 이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악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주관하는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 즉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들이
역사를 잘 못되게 했을 때는 세상 끝 날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교회는 이들 즉 세상 주관자(主管者 ;코스모크라토르)들이 잘 못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바른 말을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거룩한 책무가 있다는 것을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작금에 기독교의 목사들이 잘 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다 기록하려면 제 남은 인생을 다 바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정답을 모를 때는 보는 관점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답을 알고 나면 여러 가지 관점이란 잘 못된 것임을 누구나 알게 됩니다.

 

에스라성경강좌에 참석하는 분들이 매년 4천명 내지 5천명 가량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목회자 선교사 신학생 등 신학을 하신 교역자들이 항상 20 % 안팎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목회자들이 10,000 명 이상이 수료 했습니다.
목사님들의 경우에는 더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체로 목사님들의 경우에는 5회 내지 7회 정도 참석하신 후에야
자신들이 잘 못 배운 것이 확실하다고 고백들을 합니다.

누구든지 최소한 10 번 정도 더 참석해 보시고 또 목회를 하시면서
한국 교회와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좀 더 알아 가시다 보면 그동안 우리 기독교가
성경을 너무나도 안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 잘못 가르치고 미흡하게 가르쳐 왔다는 것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강좌를 들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그 많은 목사님들이 다 잘 못될 수 있다는 말인가.......!?하면서
오히려 노우호 목사 한 사람이 잘 못되었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도 잘 못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많은 카톨릭(기독교보다 더 많음)이 잘 못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잘 못되었고 루터와 칼빈은 이를 간파하고 일어서 종교개혁을 추구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슬람교가 다 잘 못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많은 이슬람교 전체가 잘 못되었습니다.

1억 5 천만이나 되는 흰두교가 잘 못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힌두교는 잘 못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온 세상에서 힌두교 신자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스님들이 다 잘 못되었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물론 그 많은 스님들이 세상을 다 버리고 수도 정진했지만 잘못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유대교 랍비들이 독사의 자식들로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율법학자들이 잘 못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서기관들, 성경을 손으로 일일이 사본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잘못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잘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철학자들, 그렇게 많은 박사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 그렇게 똑똑해 보이지만 잘 못되었고 하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대학들이 있고 그렇게 많은 교수들이 있지만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신학대학 교수들이 있지만 결코 모르고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목사님들보다 더 많은 가톨릭 수도사들이 세상적인 모든 것은 다 포기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수도하고 하지만 잘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렸던 말씀 중에 후세에까지 남기고 싶은 말이 한 구절 있습니다.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하는 것입니다.

비교하고 분석하고 고민하는 갈등한 것은
저도 누구 보다 더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비교해 보시고
또 연구 비교 분석 분별 판단 해 보시고 그리고 스스로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강의 중에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
노우호 목사든 그 누구든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저도 꼭 같은 약점과 허물이 있는 하찮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노우호라는 사람을 지나치게 신뢰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드릴 말씀은 제가 한 말과 주장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진지하게 분별하고 고민하는 일은 각자의 몫임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샬  롬


노우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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